일본의 근대사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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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근대사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까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의 근대사
-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까지 -
Ⅰ. 서론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는 한국의 이웃나라인 일본이다.
일본은 19세기말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이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일찍부터 강국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일감정이 그렇게 좋지 않은 관계로 역사 수업 등에서는 불과 10페이지 미만으로 일본의 전체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은, 옛 중국과 한국의 문화를 받아가기만 했던 모자란 나라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인식과 상관없이,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에서 어떻게 일본은 남들보다 일찍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는가, 또 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성공한 근대화의 경우로 예를 들어지는 것인가를, 몇가지 중요 키워드를 통해 순차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흑선 내항 (黑船 內港)
일본의 근대화를 알리게 되는 그 시작은 가에이(嘉永) 6년(1853) 6월 3일, 일본 우라가(浦賀. 현재의 가나가와 현) 해안에 출현한 4척의 흑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미국의 페리 제독이 배를 이끌고 일본으로 와 도쿠가와 막부에 개국통상조약 체결을 요구 한 것으로, 당시 폐쇄적인 일본의 국가 분위기에 있어서 이것은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된 사건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근대사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흑선내항 사건이다. 이때 막부는 치바(千葉), 시나가와(品川) 등 군영청(軍)을 갖고 있던 영주들에게 해안 경비를 명하였고, 각 영주 들은 자신의 번에 소속된 무사들을 모아 우라가(浦賀) 해안에 집결 시켰다.
그러나 대포가 없어 절의 종을 떼어 해안에 설치하고, 대나무를 쥐게 하여 총으로 착각하게 하라는 상사(上士)들의 모습에 향사(鄕士)들은 도쿠가와 막부의 무력함을 깨닫게 된다. 페리는 당시의 미대통령 필모어(M.C.Fillmore)의 친서를 들고 왔었다.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을 계기로 본격적인 서부 개발에 나선 미국은 등유나 초를 많이 필요로 하게 되어, 포경업이 중요산업이 되자 포경선의 기항지로서 일본을 개국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도쿠가와 막부는 이듬해의 봄까지는 답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페리와 흑선은 10일 만에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봄, 페리 제독은 8척의 함대를 이끌고 우라가 앞바다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유력한 다이묘(大名)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페리 제독의 요구에 도쿠가와 막부는 개국(開國)을 결의, 요코하마(浜)에서 화친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일본은 미국선박에게 식품, 연료, 식수를 공급하고, 시모다(下田)항과 하코다테(箱館)항을 개항 할 것, 미국 영사가 일본에 주재하며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최혜국 대우를 하는 것 등이 그 내용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친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때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존왕양이(尊王攘夷)사상을 외치게 된다. 존왕양이(尊王攘夷), 즉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오랑캐를 몰아내자고 하는 이 사상은 훗날 도쿠가와 막부를 붕괴시키는 초석이 된다.
이때부터 일본은 개개인의 사상이 갈래갈래 갈라져 폭풍과도 같은 시기를 거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