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문화와 나라시대
2.아스카 문화 형성 배경
6세기 중반 (공식적으로 불교가 도입된 것은 538년, 552년) 백제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불교는 그 수용 여부를 두고 당시의 유력 호족인 소가 씨와 모노노베 씨가 극렬하게 대립하였다. 소가 씨는 백제인 목협만치의 후손으로 미신적인 신도 보다 고급종교인 불교를 통해 국가 개혁을 주장하며 불교를 수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반면 모노노베 씨는 일본 고대부터 내려오는 신도의 신봉자였기 때문에 국가 형상 체제 유지를 주장하며 불교를 수용하는 것을 반대 하였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이끌어 결전을 벌였고, 결국 천황가의 외척이기도 한 소가 씨가 최후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독점하게 되고 비로소 불교문화가 꽃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싸움을 도래인 소가 씨와 토착민 모노노베 씨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당시 불교 공인을 둘러싼 개혁파와 보수파의 권력 투쟁이었다.
*당시 불교를 수용해야 했던 이유.?
소가 씨가 권력을 잡게 된 후 불교는 조정의 보호를 받으며 급속하게 발전하여 조정이 있던 아스카 지방을 중심으로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피기 시작 했는데 이를 아스카 문화 라고 한다.
3.아스카 문화의 특징
- 백제의 영향을 받은 불교문화.
아스카 문화가 꽃피기 이전 5세기 초에 백제에서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한문을 전해 주었고 6세기 초반에는 유학의 기본경전인 시경, 상서, 주역, 예기, 춘추 에 밝은 학자인 오경박사를 파견 하는 등 이후에도 백제에서 일본으로 많은 학자와 예술인 들이 파견되었다. 또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이때 일본 내에서 보수파와 진보파의 격렬한 갈등이 있었지만 진보파의 승리로 일본에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 되어 불교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배불파를 일소한 소가 씨는 즉시 백제에 사절을 보내 슬려와 사원건축에 필요한 기술자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백제는 다음해에 혜총 등의 승려와 절 짓는 목수 탑의 상륜부를 만드는 노반박사, 기와 굽는 와박사, 그림 그리는 화공 등 많은 기술자를 일본에 보냈다.
* 그렇다면 고구려와 신라의 영향은 없었을까.?
- 율령(律令)의 반포
당시 섭정의 지위에 올라 아스카 시대의 중심에 서있던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발전시키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다. 또 쇼토쿠 태자는 중국 정치 체제의 근간인 율령제를 수용하려 하여 첫째로 관리들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12관위를 제정하였다. 그리고 모든 백성은 천황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불교를 믿고 평화롭게 살라는 내용의 17개조 헌법 이라는 정치적 도덕적 훈계 형식을 가진 시정 강령을 발표 하였다. 이는 불교를 또다른 통치의 방편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쇼토쿠 태자가 외래문화 수입에만 열성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신도는 천황사상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유(儒), 불(佛).신(神)의 장점을 모두 모아 서로 배척하지 않고 융화 시키며 공존케 하는데 힘썼다. 이후에 쇼토쿠 태자가 죽고 소가 씨가 몰락하자, 고토쿠 천황이 즉위 하여 도읍을 아스카에서 나니와(지금의 오사카)로 옳겨 이듬해에 개신의 조서를 반포하여 대규모의 개혁을 단행하니 이것이 다이카 개신이다. 이로써 일본은 본격적인 율령 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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