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회 학술
중국 고대의 봉건사회에서는 종교, 정치, 학술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대 사회는 정치와 종교가 합일되고 관리와 스승이 결합된 사회였다. 그래서 고대의 학술은 기본적으로 귀족의 학술이었고 이를 ‘왕관지학(王官之學)’ 이라고 부른다.
-고대의 귀족학술은 ‘예’를 중심으로 하였다. ‘예’는 국가를 다스리는 근거이며 군사행동의준칙이며 개인행동의 규범이었다. 그래서 ‘예’는 고대사회의 정치와 학술의 총칭이며, 이에 가장 능통한 ‘축(祝)’과 ‘사(史)’는 고대사회의 학자였던 것이다.
음양가
은나라 시대의 홍범구주(洪範九疇)에 보이듯이 중국에서는 우주의 원리를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범주가 서로 교대하며 소장(消長 소멸과 성장)하면서 삼라만상의 현상이 생성변화한다는 관념이 강하게 형성되어있었는데 거기에 다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의 움직임에 따라 천지만물의 소장(消長)과 인간의 운명의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사상이 첨가되었다. 이러한 중국 고대의 사상을 신봉하는 것이 음양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제(齊)나라 사람 추연(鄒衍)이었다.
유 가
유가사상은 흔히 유교(儒敎)와도 혼동되나 엄밀하게 말하면 유교는 한대(漢代)에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유학을 성교(聖敎)로 추앙하여 탄생한 일종의 정치성과 종교성을 띤 이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철학사상으로서의 유가사상 또는 유학과 구별된다. 공자(BC 551∼BC 479)가 태어난 춘추시대는 주(周)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제후들이 무력을 바탕으로 자칭타칭으로 왕을 칭하고 나온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이며 변혁기였다. 공자는 이러한 시대를 문제로 인식, 이것의 해결을 과제로 삼아 당시를 무도한 세계[無道之界]로 규정하여 도가 있는 세상[有道之界]으로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는 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예(禮)와 악(樂)의 조화로 잘 통치되었던 주대(周代)의 문물제도를 되살리는 데서 찾으려 하였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