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왕의 시조 ‘황조가’
화희와 치희의 싸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유리왕 에 대한 짧은 소개
*고구려 제 2대 왕. 유리, 유류, 주류, 또는 유리명왕이라고도 합니다.
* 유리왕은 부여에서 홀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여인의 물동이를 새총으로 쏘게 되고, 그 여인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부끄러운 수모를 당한 후, 끊어진 칼자루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에 입국 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자로 책봉되어 동명왕에 이어 왕으로 즉위 하였습니다.
(동명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몽 이기도 합니다.)
유리왕은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짓기도 하였으며,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습니다.
황조가의 탄생 배경
유리왕은 왕비 송씨가 죽은 후, 두 여자를 계실로 얻었습니다.
한명은 화희로서 골천 사람의 딸이고, 한명은 치희로 한인의 딸인데 두 여자가 서로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다투므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동쪽과 서쪽에 따로 궁궐을 짓고 각기 살게 하였는데, 후에 왕이 사냥을 간 사이 화희가 치희에게 ‘ 너는 한족의 천한 여자로 어찌 무례함이 이렇게 심한가?’ 라고 말 하였고 치희는 부끄럽고 한이 되어 그만 자기나라로 떠나버렸습니다.
유리왕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치희를 쫓아갔으나, 치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리왕은 나무 밑에서 쉬다가 꾀꼬리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이 시조를 지었다고 합니다.
.
편편황조(翩翩黃鳥) 훨훨나는 저 꾀꼬리
자웅상의(雌雄相依) 암수 서로 다정한데
염아지독(念我之獨) 외로울사 이내 몸은
수기여귀(誰其與歸) 뉘와 더불어 돌아갈꼬
황조가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