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제3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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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과 제3부 죽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죽음이란 생명이 끝남을 의미한다. 내가 누구였고, 재산을 얼마가 있고, 가족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가 모두 소멸해 버린다. 더 이상 나라는 존재가 아니며, 두 번 다시 내가 될 수 없다. 이런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는 것이 자살이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답이 나왔다. 왜 자살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왜 나는 가난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이렇게 고생하는가?, 왜 나는 성적이 낮아서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가는가?, 왜 나는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왜 나는 잘생기지 않았는가?, 왜 나는 실패만 하고 성공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돈을 못 벌고 힘들게 사는가? 모두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즉,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결심한다. 이런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자고, 죽어서 사라져 버리자고 말이다.
어떤 식으로 자살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애초에 자살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정상적이지 못하지만 말이다)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비판, 분노로 점철되어있다. 그런 갈 곳 없는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그런 분노가 자리 합리화를 거쳐 외부로 표출되면 살인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최근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 중 정상인은 자살을 하고, 비정상인은 범죄자가 된다고 정리된다.
2) 안락사는 타당한가?
타당하다. 암 말기로 인해 고통 받으며 항생제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경우나 식물인간이 되어 생물학적으로만 살아있는 경우 등에 필요한 것이 바로 안락사다. 가시덩굴로 뒤덮인 도착점(삶의 끝)을 굳이 한발 한발 파고들어가 서서히 찢겨 죽는 것 보다 가시덤불 앞의 땅을 도착점으로 만들어 자리에 누워버리는 것이 훨씬 낫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도착점이라면 좀 더 좋은 도착점을 새로 만드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다. 강제로 안락사를 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가시덤불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사람(당사자)이던, 가시덤불로 걸어 들어가게 해야 하는 사람(보호자)이던 간에 선택지를 주자는 것이다. 편안한 죽음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허용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생각되지 않는다.
3)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절대 될 수 없다. 삶에서 행복을 느낄 때에는 작게 맛있는 것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성취감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돈을 많이 벌거나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거나, 사업이 성공하거나 하는 등의 일이 있어야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행복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위의 행복을 느끼는 조건의 정 반대 상황인 불행을 느끼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맛있는 것을 사먹지 못하거나, 친구가 없거나, 돈을 적게 벌어 생활이 힘들거나 하는 등의 일 역시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는 말 역시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 만으로는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다. 돈, 가족, 능력 등의 요건이 갖춰지고,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아야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4)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게 되면 마지막으로 말을 남기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보게 되며, 마지막 숨을 내뱉게 된다. 죽음이란 끝(Ending)이다. 죽음은 어떠한 말로 포장하고 아름답게 미화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빈소를 방문하며,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심하면 죽은 이를 헐뜯거나 욕하더라도 이미 그 존재는 끝났다. 그 무수한 행동은 절대 닿을 수 없으며, 어떠한 말도 죽은 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 끝났기 때문이다. 그 말과 행동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아직 끝나지 않은 자들 뿐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수면에 던져진 돌과 같다. 돌 자체는 던져진 순간 물에 빠져 그 존재를 감추고 가라앉아 사라져 버리지만, 그 자체가 남긴 파문은 수면(세상)을 뒤흔든다. 돌이 물에 빠진 것 자체는 수면에 퍼진 파문으로만 알 수 있다. 파문이 사라지면 이내 돌이 던져졌었다는 사실도 잊힌다. 돌이 있었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수면에 얼마나 많은 돌이 던져지고, 얼마나 많은 파문을 남기고, 또 얼마나 많이 잊혀져 가라앉아있을까. 큰 돌은 커다란 파문을 남겨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빠졌는지도 모를 것 같은 작은 돌들은 파문조차 남기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돌이 던져진 순간 그걸 기억 할 수 있는 건 수면뿐이다. 그러나 돌이 던져진 후에 돌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