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 경기도 화성 살인사건
2. 살인의 추억 영화와 실제사건 비교
3. 살인의추억 (주인공성격)
4. 영화 '살인의 추억' 배우의 본래 성격 & 배역 배정
-결론 (평가)-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처음에는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잇따라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연쇄살인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경찰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경찰력을 집중하였다. 당시 경찰은 연인원 1백80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용의자 1만8천 명을 수사했다. 지문과 유전자 감식 의뢰 건수만도 4만여 건. 그러나 결국 범인을 색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수사 과정에서 1988년 1월 용의자로 몰린 명노열 군(당시 16세)이 고문 끝에 숨진 데 이어 1990년 12월 용의자로 조사 받은 차겸훈씨(당시 38세)가 정신분열 증세로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 했다. 1991년 9번째 사건 때 윤모군(당시 19세)이 고문에 못 이겨 허 위자백했다가 유전자 감식 결과 무죄로 풀려났고, 1993년 8월에는 서대 문경찰서가 한 심령술사의 제보만 믿고 화성주민 김종경씨(당시 46 세)를 연행해 강압수사를 벌이다 김씨가 결백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런 불상사가 거듭되면서 '화성 괴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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