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자연의 거울
야콥 반 캄펜 설계 1648년, 17세기 네덜란드 시청
유럽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 진영으로 나눠서 대립하게 되자 네덜란드와 같은 조그만 나라의 미술에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오늘날 벨기에라 부르는 네덜란드 남부지역은 가톨릭으로 남아 있었고, 네덜란드 북쪽 사람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스페인의 가톨릭 군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부유한 상업 도시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신교를 믿었던 것이다. 이들은 경건하고 근면 절약하며 대부분 남쪽 지역의 호사스러운 허식을 싫어했다. 도시가 안정되고 부가 축적됨에 따라 그들의 세계관도 성숙해 갔지만, 당시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을 휩쓴 바로크 양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란스 할스 ,
1616년, 캔버스에 유채
신교 사회에서 계속 될 수 있었던 회화 영역은 초상화 그리기였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어했으며 시장이나 시의원으로 선출된 명사들은 직위가 들어있는 초상화를 원했다. 더욱이 지방 위원회 및 자치단체의 임원들은 회의실이나 모임장소에 그들의 집단 초상화를 자랑 삼아 걸어놓는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독립한 네덜란드 시민들은 군복무를 해야 했고 각 부대의 장교들을 위해 호사스러운 연회를 베푸는 것이 당시 하를렘 시의 관습이었으며 이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 기념하는 것도 전통이 되었다. 할스는 이 의례적인 모임에 생기를 불어넣어 유쾌한 분위기를 전달하며 구성원 개개인을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프란스 할스
1633년경, 캔버스에 유채
할스의 개인 초상화는 이전의 초상화들과 비교해 보면 거의 스냅사진 같아 보이며,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초상화들은 화가가 주문한 사람의 어떤 특정한 순간을 포착해서 화폭에 영원히 고정 시켰다는 인상을 주는데, 할스의 물감과 붓을 다루는 방법을 보면 그가 순간적인 인상을 재빨리 포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상화 주인공이 그들다운 동작과 분위기 속에서 우연히 취하는 듯한 이러한 순간적인 인상의 포착은 치밀하게 계산된 노력이 없이는 결코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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