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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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문학을 참 좋아한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출석률을 보시며 의아해 하시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책이 그리고 글이 너무 좋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늘 그들의 표현력에 기가 눌리곤 한다. 아니 이사람 언제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왔지? 내 마음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밖으로 전하고 있는 이 문장과 단어들은 또 뭐지?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그 느낌들, 생각들, 마음이 책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언어의 한계에 한없이 초라함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결국 문학이 좋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참 거창하고 커다랗게 다가오는 질문이다. 조금 간단하게 생각하고 싶은데, 문학이란 이 단어는 왠지 모르게 형식적이고 딱딱하다. 그래서 나는 리포트와 나의 연상을 돕기 위해 구체적인 사물을 떠올리고 있는데, 지금 떠오르는 것은 나의 서재이다. 나의 서재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자기계발서, 판타지소설, 고전, 심리소설, 만화책, 잡지, 논어, 장자에 이르기까지....... 이 종이 조각들이 나에겐 문학이다. 이들은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말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하고, 대공감하며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부분을 일기장에 옮겨 적는 호들갑을 떨다가도 때로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상당히 불쾌해하며 거칠게 책장을 넘긴다.
문학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말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와의 대화의 사이에서 때론 신난 독자의 호들갑을 뿌듯해하며 지켜보고, 때론 그들의 눈물을 묵묵히 받아주고, 또 때론 거칠게 넘기는 분노의 손놀림을 견뎌내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대변인.
비단 책만이 문학은 아닐 것이다. 글을 매개로 나의 내면을 진실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난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리포트도 문학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나의 일기, 독서노트, 편지 이러한 것들 역시 문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내가 구지 ‘발전한 가능성이 있다’라고 제한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문학이란’ 잘 정돈되고 정리된 서재와 같은 느낌이고 싶기 때문이다. 난잡하고 성의 없는 글 쪼가리가 아니라 정성을 들이고 고심하여 쓸고 닦은 정갈한 서재와 같은 곳. 그래서 요즘 인기가 되고 있는 인터넷 소설들을 보면 무척 화가 난다. 비록 나는 문학전공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맞춤법도 틀리고 체계도 없는 듯한 글 전개에 당황을 넘어서 불쾌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과연 이러한 것들도 ‘문학’ 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이미 나는 그것을 ‘이러한 것들’ 이라고 표현하면서 나의 대답을 내렸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글쓰기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인터넷소설’을 일례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 이 아니라 ‘글쓰기’ 일 뿐이다. 사실 글쓰기라고 표현하는 것도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광분의 리포트를 쓰며 나 따위가 무어라고 ‘이건 문학이라고 치부 할 수 없어요.’ 라고 깐깐하게 구는, 그리고 더욱 깐깐해 지고 싶은 분야. 그 고전과 순수성을 지키고 싶은 오래된 서재와 같은 곳. 그 속에서 나의 손길이 닿기만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면 기다렸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그러나 조곤조곤 각자의 목소리로 말을 걸고 논쟁하고 질책하고 가르치는 곳. 문학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양하여 나는 정의내리기가 두렵다. 역시 오늘도 또 나의 언어의 한계를 느낄 뿐이다.
끝으로 나는 독자와의 관계가 결국 문학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정겹게 불러도,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받아들이는 이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문학의 존재는 무용지물이겠지. 결국 문학과 독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맞는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소설속의 ‘우리’ 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이지만, 문학과 독자와의 관계에서도 성립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표정훈 작가의 말처럼 문학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든다. 유머가 넘치는 작가의 문체와 글을 만나고 나면 나는 어느새 재치 있는 여자가 되어있고, 따끔한 충고로 가득한 진중권교수의 비평을 읽으면 마치 회초리를 맞은 듯 해 심란해진다. 달달한 연애소설을 읽고 나면 이미 내 마음은 설탕에 버무려진 유자차를 마신 듯 녹아내리고, 몇 천 년을 건너온 나 과 같은 고서를 접하면 나는 잠시 시대를 잃고 방황하다 그 변하지 않은 진리와 가르침에 감탄한다. 나에게 휴식을 주는 고마운 서재. 나의 안식처. 문학을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또 앞으로 나만의 문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나는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