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넛츠 - 최후의 판결 -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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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
소란스러운 구치소, 그 안에 앉아있는 여주인공이 이름을 불려 재판을 받으러 나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여주인공의 재판 쟁점은 그녀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이다. 그녀는 매춘을 하다가 강압적인 손님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이는 1급 과실 치사죄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검사는 진단서를 제출하며 그녀가 재판 받을 능력이 없으며 정신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변호인 또한 그것이 그녀가 보호받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하며 그녀와 의논하거나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녀가 재판 받을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녀는 재판을 받기를 원하고 스스로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 그녀는 자신의 변호인에게 “당신은 누구죠?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죠?”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히 그녀의 변호인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인은 어떤 존재이며 과연 피고를 위해 일하는 사람일까?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한편 변호인과의 논쟁 중에 결국 소란을 일으킨 여주인공은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게 된다. 새로운 변호사는 앞의 변호인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녀의 말을 들어주며 의논하며 그녀의 의사표시대로 재판 받을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기로 한다. 결국 그녀가 재판 받을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재판이 열리게 된다. 엄숙하게 절차대로 진행되어야 할 재판에 미숙한 그녀는 소란을 피우기도 하지만, 결국 재판의 과정동안 그녀는 그녀 자신을 위해 증인 역할을 수행하며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또한 어린 시절 그녀가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실이 밝혀진다. 이는 그녀가 과민하게 행동하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질 만한 행동을 한 근거가 되는 사실이다.
결국 판사는 두 가지 쟁점에 따라 그녀가 재판 받을 능력이 있다고 판결을 내린다. 첫 번째는 자신에 대한 기소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며 두 번째는 자신의 변호를 도울 수 있는가 이다. 이러한 쟁점들 또한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영화에 대해 개인적 법률적 시각을 논하기 전에 영화의 증인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여주인공의 의붓아버지는 본인은 딸을 사랑하며 자애로운 아버지임을 주장했다. 이처럼 본인이 딸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에 근거하여 딸에게는 재판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재판은 아픈 딸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딸을 진심으로 위해서 걱정하는 아버지 같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딸이 재판을 받지 않아서 일이 커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에는 본인의 유명세에 영향을 끼칠 염려가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딸에게 저지른 범죄가 드러날까봐 서둘러 덮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의붓아버지가 여주인공에게 저지른 성폭행은 그녀의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즉 그가 그녀의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은 그녀에게 욕실에서의 트라우마를 갖게 했으며, 이 트라우마로 인해 그녀는 이혼을 하게 되고 손님을 거부하게 되어 결국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또한 의붓아버지로 인해 그녀의 친엄마 까지도 불신 하게되어 가족과의 관계조차 소원해진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으며 변명만 늘어놓다가 퇴장한다. 이는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보다 은폐 욕구가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그녀의 엄마는 그녀에게 꾸준히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정말 몰랐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회상장면에서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방 안에서 울고 있는 것을 봤으면서도 그저 방문을 닫고 지나친다. 이는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감정적으로 방치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녀의 말처럼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엄마는 한번 이혼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 재혼한 남편과 함께하는 안정적인 삶을 깨고 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남편의 성폭행이 딸의 삶에 무지막지하게 큰 영향을 미칠 사건임을 알았다면 방치하지 않았을 엄마임을 알 수 있다. 끝에 가서 그녀와 안으며 화해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엄마가 “네가 이기길 바라 이제 너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주인공 본인은 “그저 사랑 받고 싶을뿐이 었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어린 마음에 의붓아버지의 요구에 반강압제적으로 따랐을 수도 있다. 이미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친아버지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의붓아버지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긴장은 그녀가 쉽게 화내고 과민반응하며 타인을 불신하는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재판 받을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 먼저 영화속 판사가 논한 두 가지 쟁점을 우리나라 법조문과 관련지어 살펴보겠다.
먼저 여주인공 피고인이 자신에 대한 기소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형법상의 책임능력이 있다. 책임능력은 자신의 행위가 불법행위로서 법률상의 책임을 발생하게 한다는 것을 지각할 수 있는 정신능력을 의미한다. 피고는 자신이 왜 기소되었으며 그 기소의 내용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음을 판사에게 어필한 바 있다. 피고는 자신이 1급 과실치상죄로 기소되었으며 그 사건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패소할 경우의 결과를 모두 인식하고 책임질 의사를 표시했다. 이처럼 책임능력은 법률행위의 유효 요건인 의사능력을 책임의 면에서 보아 파악한 개념이다.
두 번째로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변호를 도울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 이 쟁점은 민법상의 행위능력과 관련이 있다. 행위능력은 단독으로 유효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지위와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여주인공은 진정제를 주입받고 기민한 상태에서도 스스로 증인의 역할을 잘 해냈다. 이는 여주인공에게 행위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법조문에 따라서도 여주인공은 책임능력과 행위능력이 있으며 그러므로 재판 받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개인적인 견해로도 여주인공은 재판 받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먼저 그녀는 누가 권하기도 전에 재판을 받기를 스스로 원했다. 그녀가 정신과치료를 받고 심신이 불안정하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는 충분히 심신이 불안정하고 과민한 성격을 갖게 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한 그녀가 기소된 사건 또한 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는 최근에도 그녀가 트라우마를 자각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 트라우마의 근본적 원인인 의붓아버지는 그녀가 재판을 받지 않기를 원했다. 애초에 그에게 반감을 갖고 있던 그녀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기를 원하기도 했으며 정신 병원에 더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화에서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짐작하자면 그녀는 스스로 재판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권리를 주장하기위해 안간힘을 쓴 결과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 누가 과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따라서 개인적으로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 자체가 그녀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불리했으며 그녀의 재판 받을 능력이 있다는 주장 자체는 타당하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 변호사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여주인공이 먼저 선임받았던 변호사는 아주 유명하고 비싼 변호사였다. 그는 그녀가 기소된 1급 과실치상죄에 대해 재판을 받는 것이 그녀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애초에 그녀가 재판 받을 능력이 없다고 주장해서 재판의 상황까지 가지 않게 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최선의 방법을 원하지 않았다. 패소의 위험이 있더라도 재판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의 회상으로 알게 된 사실관계에서도 피해자는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며 그녀를 폭행했으며, 그녀가 피해자를 살해한 의도도 살인을 하고자함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정당방위였다. 즉 그녀는 스스로 명백했고, 그 명백함을 재판에서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녀가 두 번째로 선임 받은 국선 변호사는 이런 그녀의 뜻을 존중했다. 위험부담이 있으며 재판을 준비할 기간도 충분히 않고 그녀가 그다지 협조적이지도 않았지만, 그가 그녀의 변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의사를 존중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두 변호사의 태도는 과연 변호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변호사는 피고가 최소한의 피해를 입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피고의 피해부담이 크더라도 피고의 의사표시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변호사는 피고의 권익을 보호하는 보조자인 동시에 피고의 의사표시를 대리하는 대리인이다. 이러한 보조자와 대리인 개념은 유사해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충돌할 수 있다. 피고의 의사가 피고의 권익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 때이다. 이는 영화의 상황과 일치한다.
이와 같은 충돌이 일어났을 때 개인적으로 피고의 의사표시를 먼저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피고가 자신의 권익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권익 보호보다 의사표시를 더 우선시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피고가 상실할 수 있는 권익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하고 그 중요도를 의논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서서 피곤인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의사를 무시하고 피고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변호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보조자, 대리인이라는 단어 자체도 결국 결정의 주체는 피고인이라는 것을 내포한다.
이에 따라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당신은 누구죠?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죠?”라는 질문에는 영화 속 변호사와 같은 “나는 당신의 변호인이요, 당신은 재판 받을 능력이 없다고 주장해야 해요.”라는 대답보다“나는 당신의 대리인이며 당신을 위해 당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왜 재판 받을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원하죠? 함께 의논해 봅시다.”라는 대답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처럼 여주인공이 재판 받을 권리가 있는지 우리나라 법조문을 통해 분석해보고,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개인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