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이병철
chapter01.정주영, 이병철의 성격과 인상
정주영은 아무렇게나 빗어넘긴 머리, 희미한 눈썹, 약간 부은 것 같은 두툼한 눈꺼풀, 커다란 뿔테 안경이 일종의 소품이라면, 오른쪽 안면에 힘을 준 채 수줍게 웃는 특유의 미소는 그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트레이드 마크이다.
정주영의 이러한 순박한 웃음은 상대를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이병철은 그리크지 않은 체격에 호리호리한 편이였는데 키 167센티미터에 60킬로그램을 넘지 않았다고 하니 아주 작은 편이였고 젊은 시절부터 주름이 많았는데 특히 눈언저리에 있는 잔주름은 그의 지성과 품위를 드러내는 ‘황금 주름살’ 같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의 이목구비는 조금도 하자가 없엇고 그의 귀는 얼굴에 비해 꽤나 큰 편이였는데 그 큰 귀가 돈이 잘 붙는 관상이라고 하였다. 그의 헤어스타일은 흰머리가 제법 희끗희끗 섞여있긴 하지만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말끔하다.
이러한 모습은 이병철이 늘 단정한 사람이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얼굴 생김새만큼 옷차림도 달랐는데 정주영은 순박한 외모에 걸맞게 수수한 옷을 주로 입었고, 이병철은 정장차림을 주로 했는데 바지 주름을 항상 날이 선 일자 모양을 유지하고, 품 또한 꼭 들어맞게 입었다. 또한 중년의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는 그가 절제된 식단으로 소식을 한 결과였다. 이렇듯 이병철은 항상 단정한 옷차림으로 빈틈없고 깐깐한 인상을 풍겼다.
chapter02.그들의 경영방식
가난한 강원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은 네 번의 가출 끝에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는데 그는 공사장 막노동, 품앗이 일꾼, 공원 등의 일을 전전한 끝에 2년 만에 복흥상회 라는 쌀가게의 배달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성실함을 인정받고 2년 뒤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서울에서 제일가는 쌀가게를 만든다는 포부로 ‘경일상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는데 그의 나이 24세일 때였다. 그러나 경일상회를 시작한지 불과 2년 만에 그에게 비운이 닥쳤는데 1937년 여름 노구교 사건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터져 쌀 배급제가 실시되면서 전국의 쌀가게가 문을 닫아야 했던 것이다. 정주영은 전전하던 중 엔진 기술자 이을학을 만나 둘은 의기 투합해 ‘아도서비스’ 라는 자동차 수리 공장을 인수했지만 이 역시 화재로 인해 사업장이 불타게 되면서 정주영은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
그 후 정주영은 쌀가게 운영당시 알던 오윤근을 찾아가 3.500원을 빌려 다시 자동차 수리 공장을 열었지만 또다시 일제의 식민 통치 때문에 공장이 강제 합병되어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운송업에 뛰어들어 광석을 운반하는 하청일을 시작했고 해방 이후 다시 ‘현대자동차공업사’ 라는 간판을 내걸고 또 다시 자동차 수리 공장을 시작한 것이다.
정주영은 공장 옆 건물에 ‘현대토건사’ 라는 간판을 하나 더 달았는데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불러온 정주영 식 ‘영토 확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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