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

 1  이사벨 아옌데-1
 2  이사벨 아옌데-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이사벨 아옌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사벨 아옌데
이사벨 아옌데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남성들에 의해 건설된, 폭력으로 가득차고 부조리한 가부장적 지배질서하의 사회 속에서 종속적이고 의존적 성격으로 규정지어져 온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또한 그녀는 남성들에게 이제껏 이 세계를 지탱하며 움직여 올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여성들의 포용력이며 보살핌이 아니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나는 그렇다면 이사벨 아옌데가 남성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가부장적 지배질서 하의 권위에 대항하면서 어떤 전략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남성 : 가부장적 지배질서의 또다른 희생자
남자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상처입고 고통당하는 것은 여성 뿐인가? 아옌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 역시 끊임없이 남자이어야 하는 구속 속에 놓여있다. 남자는 힘세고 튼튼해야 하며 울거나 슬픔을 나타내어서는 안된다. 남성 역시 가부장적 지배질서 하에서 조작되어진 ‘남성답다’혹은‘여성답다’는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인 것이다.
아옌데는 가부장적 사회가 남성을 끊임없이 위대함의 이상으로 밀어부침으로써 여성을 평범함의 틀속에 가둬둠과 동시에 용감하지 못한 남성을 궁지에 몰아 넣는다고 본다. 그러한 작가의 생각은 바예 집안 남자 아이들의 성인의식처럼 치뤄지던 나무 오르기에 대한 묘사에서 잘 나타난다.
바예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 긴바지를 입고 싶어지면 용기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그 나무에 올라가야 했어. 그건 마치 통과의례와 같은 거였지.[...]어느날 눈먼 사촌 헤로니모의 차례가 되었지. 그는 얼마나 높은지를 볼 수 없었고 허공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주저없이 가지를 더듬어 올라갔어. 그는 꼭대기에 다달았지만 자기 이름의 첫글자인 J를 다 새겨넣지 못했어. 그는 이무기틀 떨어지듯 떨어지더니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의 발치에 곤두박질쳐 떨어졌지 [...] 난 어느날인가 나의 아들들이 그 야만스런 전통을 계승하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 나무를 자르게 했지. 난 루이스와 다른 아이들이 창가에 그 교수대의 그림자에 가려 자나라길 원치 않았어.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의 위험을 지닌 일만이 남자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고 그러한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남자이며 진정한 남자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장님으로 태어난 헤로니모에게까지 나무에 오를 것을 강요하는 바예 집안의 성인의식은 개인이 타고난 특이한 성향과 조건들을 무시한 채 조작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야만적인 가부장적 사회를 상징하며 그 나무를 베어냄으로써 니베아는 남성들에게 강요되어 온 야만적 전통을 상징적으로 끝장내어 버렸다.
★기존 권위에 대응하는 방식-유머와 환상
유머는 단순한 우스개 거리,한번 웃고 지나갈 뿐 결코 진지하게 고려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유머 속에서 이야기된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 문제를 제기한다 해도 대개 농담일 뿐이라고 가볍게 웃음으로 지나칠 수 있다. 아옌데는 유머를 통해 불평을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기득권을 쥔채 권위라는 허울하에 그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에 대한 불신감을 표현한다.그러나 그녀는 어떠한 비판도 배제한 채, 단순히 상황을 기술할 뿐이다. 그녀는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말처럼 한마디를 던지고는 재빨리 웃음 속으로 자신의 비판의 칼날을 감춰버린다. 그녀의 유머 이면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나 명백한 물증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책임 추궁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이렇게 아옌데는 유머를 통해 종교, 이데올로기. 사회 제도 등과 같은 남성적 지배질서와 온갖권위를 희화화 한다.
그는 얼마 먹지도 않는 음식물을 한입 먹을 때마다 50번씩 씹었다. 음식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의식으로 변화해 그가 의식처럼 되새김질하고 있는 동안 알바는 빈 접시 위에서, 하인들은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잠들었다...
니콜라스의 식사 습관을 서술한 위의 인용문은 과도한 정확성으로 독자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하면서 동시에 주변적이고 사소한 일을 대단한 것인양 목숨 걸로 지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거대 담론에 쉽게 좌우되는 남성들의 단순함과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잘 보여준다.
아옌데의 작품 속에서 환상적 기술은 주로 여성이나 피지배 계층의 묘사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종속적 지위에 있는 그들의 저항 행위는 결국 난폭하게 저지당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용되어 있는 유일한 방법,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억압에 저항한다. 그것은 다름아인 ‘저항 안하기’이며 알 수 없는 세계 즉 ‘환상’속으로 숨기이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스프접시를 지팡이로 내리쳐 바닥에 떨어뜨렸다.[...]클라라는 에스테반이 퍼붓는 험한 욕설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늘 그랬듯이 침착하게 깨진 스프접시 조각을 주었다. 그녀는 그 욕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뺨에 점잖은 키스로 밤인사를 하고 나서 블랑카의 손을 잡고 나갔다.
남편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야만적인 폭력과 클라라의 냉정한 침착함이 극적을 대비되어 나타나는 위의 인용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클라라는 이러한 상황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기대되는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즉 항변을 하거나, 놀라거나,울거나,충격을 받은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마음을 닫을 뿐이며. 그래서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환산의영역에 머무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섬짓한 느낌까지 갖게 하는 그녀가 보여주는 예상밖의 태연함은 남편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는다.
◇참고자료 : 이사벨 아옌데 : 정복의 윤리에서 보살핌의 윤리로 1999.8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어서문학과 문학전공 박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