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분석 4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분석
최시한의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은 학교의 권력에 대항하는 교사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을 주 측으로 전교조 투쟁이 한창이던 1990년대의 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 속의 수많은 교육 양상 중에서도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게 되는 교육과정을 말하며, 상-벌, 고양-억제, 사회적 관행이나 문화적 편견, 인간적 차별, 물리적 배치 등은 잠재적 교육과정을 형성하는 주된 근원이다.
전교조에 가입한 ‘왜냐 선생님’이 탄압받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동료 교사가 해고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교사들은 여느 때처럼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쓸데없는 데 관심을 갖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지시를 내릴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담임선생님은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모든 의사표시는 절차를 밟아 법대로 해야지 남이 어쩐다고 우우 거기에 쏠려서는 못 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철이나 경석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 부모님의 말을 자신의 의견인 양 떠든다.
몰인정한 사람들. 동료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천연스레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생들도 그렇다. 학기가 끝나 가는데 진도가 어떻다느니,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참고서나 대학 입시하고는 너무 거리가 있다느니 하는 엉뚱한 말들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지껄여 댔다. (7월 10일)
아침에 등교하려니까 교문이 한쪽만 열려 있었다. 그리고 교문 주위에 교감과 교무주임 선생님, 그리고 못 보던 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설마 하였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이 입 모아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건 사실이 되었다. 왜냐 선생님이 학교에 못 들어오게 막은 것이었다. (7월 14일)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특징으로 하고는 있지만 다수결의 원칙이 항상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해내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기득권층의 억압 속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민주주의를 인식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가치관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허울 좋은 원칙과 명분 아래, 다수가 진리이므로 소수에게 억압과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관행을 학습해간다.
선생님은 잠시 묵묵히 서 계시더니 학생들 사이에서 나와 교단으로 올라가셨다. 이제 교단 위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교단이 산처럼 까마득히 높아 보였다. 그 위에서 세 사람 모두가 나만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7월 11일)
창밖을 보았다. 땡볕이 쏟아지는 누우런 운동장 한가운데에 누가 홀로 주저앉아 있었다. 윤수였다. 무릎 앞에 무어라 적힌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그 종이에 적힌 말은 보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렸다. / “자리에 앉아라, 앉아! 저, 저 녀석이 퇴학당하고 싶어서!”
(...) 왜냐 선생의 ‘허생전’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7월 14일)
한편, ‘왜냐 선생님’은 문답식 수업 방식과 허생전 학습으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논리적이며 주체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선재나 윤수는 참된 지식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보인다. 선재나 윤수 같은 학생들이 ‘왜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유는 다른 교사들과는 달리 교사의 권위, 학생과의 위계성을 강조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다가간 그의 모습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왜냐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수업하지 않고 학생들 사이로 파고 들어가 그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왜냐 선생님’에게 감화된 선재는 학교의 질서와 폭력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성찰하고, 윤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수·약자를 위하여 교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권력에 도전하는 등 실천적이고 주체적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학교 수업이나 학교의 관행을 통하여 영향을 받고 그것으로 가치관을 확립해나간다. 비록 현재에도 대부분의 학교들은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의 학교와 별다를 것 없이, 학교의 권위를 내세우고 입시라는 눈앞의 목표를 향하여 주입식 수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 혁신학교의 설립 및 증가와 학생 참여 수업, 협력 학습을 지향하는 참된 교육자들의 양성으로 학교 현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수업 외에도 잠재적 교육과정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많이 얻어 갈 수 있다면, 학교에서 양성된 건강한 인재들이 주축이 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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