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인 박용래의 생애 박용래, 『먼 바다』부록 中, 창작과 비평사, 1984, pp.274~277
박용래는 1925년 충남 논산군 강경읍에서 소지주이며 유생인 부모 밑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강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15세)에 강경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학업성적도 우수하였고, 학교생활에 충실하여 5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개근상을 받은 모범생이었으며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고 학교 테니스 대표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1940년(16세)에 시집간 홍래 누이가 초산의 산고로 사망하게 되는데, 이후 누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시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1944년(20세) 조선은행에 취직하여 서울 본점에서 근무하다가 가정형편상 대전지점으로 옮겨온다. 1945년(21세) 7월초, 군 입영의 영장을 받고 조선은행을 사임하고 군용열차에 실려 서울로 가던 다음날, 용산역에서 8.15해방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다. 조선은행에 복직하였다가 1947. 1. 30일자로 사임한다. 1947년(23세) 부산 교외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김소운(金素雲) 선생 김소운(金素雲, 1907년 1월 5일 ~ 1981년 11월 2일)은 한국의 시인이며 수필가. 본명은 김교중(金敎重)이고, 호는 삼오당(三誤堂).부산 출신으로 13세에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인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일본어: 北原白秋) 문하에서 시를 공부한 뒤 일본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의 민요와 동요, 시를 일본에 번역 소개했고, 수필도 활발히 창작했다. 작품으로는 서간체 장편 수필로 일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목근통신》(1952), 수필집 《삼오당잡필》(1955) 등이 있고,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한 부부 세 쌍의 일화를 소개한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잘 알려져 있다.
을 찾아가, 그곳에서 약 50일간 머물며 농장 일을 도우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 고향의 근처에서 시 습작을 하게 된다. 이 무렵 대전 지방의 문인들과 함께 ‘동백시인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동백’을 간행한다. 교사직을 전전하다가 1953년(29세)에는 서울로 올라가 도서출판 창조사 편집부원으로 근무하지만 1954년(30세) 창조사를 사임하고 대전으로 내려와 국어과 교사로 취임한다. 1955년(31세) 중학교 국어과 준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친구의 중매로 병원 간호사로 있었던 이태준과 결혼한다. 1956년(32세) 박두진에 의해 시 ,,등이 『현대문학』에 추천이 되어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1969년(45세) 첫 시집 『싸락눈』이 삼애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시집에는 등 33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시 으로 현대시학사 제정의 제1회 작품상을 수상한다. 1973년(49세) 대전북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하였지만 약 1년간만 근무하다 고혈압증세로 사임하였다. 1974년(50세) 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장으로 피선되었다. 1975년(51세) 두 번째 시집이자, 시선집인 『강아지풀』이 민음사에서 간행되었다. 69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1979년(55세) 세 번째 시집 『백발의 꽃대궁』이 문학예술사에서 간행된다. 이 시집에는 등 45편이 수록되어 있다. 1980년(56세) 시집 『백발의 꽃대궁』으로 한국문학사 제정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한다. 그해 7월 교통사고로 3개월간 입원치료하다 11월 심장마비로 대전시 오류동 자택에서 사망한다. 이후 1984년 시전집 『먼바다』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된다. 이 시집은 총160편의 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하고 있다.
Ⅱ. 시기별 작품 경향
박용래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서정성 추구와 그 완성의 과정에서 독보적인 한 단계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 주었다. 그는 시대적 상황이나 격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서정성의 추구에만 전념하였고, 그 결과 한국 현대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전통 시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권태주, 「박용래 시의 전통성 연구」, 청람어문학, 1994. p.2
이렇게 박용래는 흔히 순수서정시인이니 전통적인 서정시인이니 향토시인 등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과 시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의 시 자체가 박용래라는 인간 자체였고, 박용래라는 인간 자체가 그의 시였다 박용래, 위의 책 - 손종호의 해설, 미래사, 1988. p.142
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시와 하나가 됨으로써 그가 바랐던 바대로 그의 시가 세상에 울리는 정겨운 해금 소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용래의 시적 변모를 시기적으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는데, 권태주는 이러한 시기적 구분에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권태주, 위의 논문, p.5
근원적 고독에의 저항 - 박용래, 그 인간의 순수와 서정적 시세계 손종호, 「박용래의 시세계 연구」, 문예시학, 1988, pp.3~25
박용래의 시는 수용자의 관점에 따라 극단적인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만일 부정적인 관점에 선다면 송재영이 지적한 바처럼 시인이 현실의 상황을 외면하고 송재영, 『현대문학의 옹호』, 문학과 지성사, 1979.
에 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긍정적 관점에 선다면 메마른 현대문명사회에서 소멸되어가고 버려져가는 토착적이고 전통적인 유산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김재홍, 『시와 진실』, 이우출판사, 1984.
권태주, 「박용래 시의 전통성 연구」, 청람어문학, 1994.
김재홍, 『시와 진실』, 이우출판사, 1984.
박용래,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저녁 눈』, 미래사, 1991.
손종호, 「박용래의 시세계 연구」, 문예시학, 1988.
송재영, 『현대문학의 옹호』, 문학과 지성사, 1979.
이은봉, 「박용래 시의 한과 사회현실성」, 『시와 시학』, 1991, 봄호.
정효구, 「박용래 시의 기호론적 분석」, 시와시학사, 1995.
최동호, 「한국적 서정의 좁힘과 비움」, 『시화 시학』, 1991, 봄호.
최명표, 「박용래시연구」, 현대문학이론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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