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에프킬라를 뿌리며 감상문
황지우의 작품세계를 접한 것은 아마 현대시론 강의 시간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전 과제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어국문학과를 들어오면서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형태의 시를 접해 봤지만 교수님께서 보여 주신 와 같은 형태는 또 처음이었다. 시에는 어떤 고정된 형태나 무조건적인 규칙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꽤 큰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을 시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시로서 갖출 만한 운율이나 심상, 함축적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 시었다. 적어도 첫인상은 그랬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주시고 그 후 다시 읽어 보았을 때,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심상과 함축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아직까지도 운율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깨고 황지우 시인의 다른 작품을 여러 편 읽어 보니 얼추 읽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 중에서도 시집 《새들도 하늘을 나는구나》의 를 다루어 보려 한다.
《새들도 하늘을 나는구나》의 시는 모두 1980년대에 멈추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교수님께서 보여 주신 두 시도 그렇고 이나 내가 다루려고 하는 도 그렇다. 그것은 시인이 1980년 광주에 일어났던 사건에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시집 전체의 분위기가 그러하듯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잘 나타낸 황지우의 시는 많지만 그 중 가장 간결하고 가장 또렷하게 그 때를 표현한 시가 인 것 같아 나는 이 시를 다루기로 했다. 아는 사람이라면 이 시에서 파리가 무엇을 칭하고 있는 것인지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과 파리, 당시의 상황과 에프킬라를 연관 지으면 그 때의 상황과 분위기를 아주 잘 알 수 있다. 파리 목숨과 비슷하게 여길 정도로 가벼운 사람의 목숨과 울음 소리를 낼 파리 하나 없이 초토가 된 그 곳, 그리고 그나마 남아 있는 파리들에게 아직 남은 에프킬라의 향기를 유의할 것을 당부하는 마지막 연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그 초토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앞으로 더 뿌려질 수 있는 에프킬라를 조심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물론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그런 에프킬라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파리를 잡으며 심각한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시 속에서 에프킬라를 쥐고 있는 사람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미 초토가 된 거리 여기저기에 있는, 파리 목숨만도 못 한 사람들을 잡기 위해 무심히 에프킬라를 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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