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기림 분석1
1. 김기림의 생애
(본명 : 김인손 필명 : 편석촌)
1908년 5월 11일에 함경북도 학성군에서 6녀1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기림의 집은 그의 아버지가 사업에서 큰돈을 벌어와 넓은 과수원과 농토를 사들여 부유하게 자랐으며, 김기림이 자란 유년기의 마을에서는 김기림의 일가족은 지주로서 행세할 수 있었고 또 충분한 재력으로 자녀들은 일본유학을 가능하게 했다.
김기림의 아버지는 사업에도 수완을 보였지만 늘상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봐주기도 했고, 마을에 학교를 세워 김기림의 백부를 교장 겸 교사로 하여 마을의 아동들을 모아 국문, 산수, 한문 등을 가르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학교는 한일합방이 되자 곧바로 일본인들이 보통학교를 세운다고 해서 강제로 빼앗기고 이에 김기림의 백부는 큰 충격을 받고 두문불출하게 된다. 이것이 김기림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일본인이 세운 경성고보를 가지 않고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그의 백부의 민족정신은 은연중에 김기림에게 영향을 주어, 김기림은 그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생활에도 불구하고 신문기자 생활을 하고 문단생활을 할 때도 친일적인 글을 거의 쓰지 않는다.
1931년 일본에 유학을 가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김기림은 그의 첫사랑인 이월녀와 결혼하지만 곧 이혼한다. 시
그리고 이때쯤에 조선일보에 입사하게 된다. 다음해인 1932년 신보금과 다시 결혼하고 문단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1933년 그는 이종명과 김유영의 발기로 조직된 에 가담한다. 이 모임은 처음에는 동인활동이기 보다는 친한 친구들의 모임이었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문학보다는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로 박태원의 소개로 만난 이상과의 만남은 김기림과 이상이 가장 친한 친구로 남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36년 김기림은 다시 일본의 동북제대 영문학부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7월에 첫 시집인 『기상도』 이상이 김기림을 대신해 발간함.
를 발간한다. 이때 동북제대에 다니면서 당시의 서구문학이론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되고, 자신의 시론의 기틀 미국의 I.A.리차즈 등의 신비평가들을 연구함. 과학적 시학의 방법론을 연구함.
을 잡게 된다.
1939년에 동북제대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사에 다시 돌아와 복직한다. 그리고 9월에는 두 번째 시집인 『태양의 풍속』 『기상도』보다 먼저 지어진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되면서 원전과 많이 달라짐.
을 발간한다.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고 일본의 침략이 막바지에 이르자 조선일보도 문을 닫게 된다. 그리하여 김기림은 고향으로 돌아가 경성중학교의 교사로 있게 된다. 1945년 광복이 된 직후 서울로 내려온다. 이 무렵부터 대학을 전전하며 교수직을 하면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한다.
김학동(2001), 『김기림평전』, 새문사
윤병노(2003), 『한국 근 현대 문학사』, 명문당
조동일(2005), 『한국문학통사』제4판, 지식산업사
참사랑국어 카페 (cafe.daum.net/truedu)
문학 자습서 (천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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