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비운의 여장부인가 파렴치한 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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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성황후 비운의 여장부인가 파렴치한 여인인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명성황후, 비운의 여장부인가 파렴치한 여인인가
우리는 명성황후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민씨 성을 가진 고종이라는 왕의 왕비라는 객관적인 사실 그대로 보고 있는가?
티비와 뮤지컬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보여 지는 대로 보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은가?
한 인물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객관적 사실과 그 인물이 풍미했던 시대, 업적 등 모든 것이 중요한 요건이 된다. 그는 시대를 풍미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났던 비운의 여장부 인가, 시아버지와 척을 지고 남편을 뒤에서 조종한 조선사회에서 찾기 힘든 파렴치한 여인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과거에는 민비라고 불려 졌던 명성황후, 현 시점에서도 그녀에 대한 찬/반에 따라 민비라 칭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명성황후라는 명칭으로 발표를 진행하려고 한다. 명성황후라는 명칭 안에 발표자의 사견이 들어가 있지 않음을 밝힌다.
1. 명성황후의 생애.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고 굉장히 어색해 했던 명성황후 대신 궁녀가 찍었다는 설도 있고. 명성황후가 못생긴 얼굴을 부끄러워 했다는 설도 있다.)
1. 1851년 음력 9월 25일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1(여주 근동면(近東面) 섬락리(蟾樂里) 사저)에서 민치록(閔致祿)와 한산 이씨 사이의 외동딸로 출생
2. 영의정 민치록의 딸로 9세 때 고아가 되어,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민씨의 천거로 왕비에 간택, 책봉.
3. 궁인 이씨에게서 완화군이 태어나자 이를 기뻐하는 흥선대원군과 대립, 흥선대원군의 반대파를 규합하면서 민씨 척족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세력 기반을 착실히 다짐.
4. 1873년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 내외정세가 긴박, 흥선대원군의 실정(失政)이 계속, 그를 탄핵하기 위해 최익현(崔益鉉)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 이어 흥선대원군파의 반대 상소와 주장을 배척, 고종에게 친정(親政)을 선포하게 함. 대원군파를 숙청하고 쇄국정책을 폐하여 일본과 수교.
5.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때 신변의 위협, 충제에서 피신 생활. 흥선대원군 국상(國喪)을 선포. 윤태준을 고종에게 밀파하여 자신의 건재를 알리고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 청나라 군대의 출동으로 군란이 진압된 뒤 다시 흥선대원군을 몰아내고 재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