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이치를 따져 보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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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물의 이치를 따져 보는 공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물의 이치를 따져보는 공부
수업시간에 배웠던 격물치지에 대해서 조사해보았다. 격물치지의 개념과 의미, 중국유학에서, 조선유학에서의 격물치지에 의미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고, 그것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 자료들을 통해 적어 보았다.
1. 격물치지의 개념과 의미
격물과 치지는 유학에서 인식론과 수양론, 나아가 실천론을 관통하는 철학적 개념으로서 『예기』의 『대학』편에 처음 보인다. 이 책에서 격물과 치지는 도덕적 수양(성의정심수신)과 이에 근거한 사회적 실천(제가치국평천하)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집안, 나라, 천하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인격 수양을 해야 하고, 인격 수양을 위해서는 먼저 ‘치지’를 해야만 하는데, 치지는 ‘격물’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격물과 치지는 본래부터 수양과 실천을 뜻하는 개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개념이었다. 그 결과 격물과 치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은 『대학』이라는 텍스트의 문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를테면 『대학』의 삼강령이나 팔조목과의 논리적, 실천적 연관성을 해명한다든가, 아니면 전후 문맥에 등장하는 ‘물, ‘지’ 등과의 의미론적 관련성을 밝히는 것 등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글자의 본래 의미를 천착하는 훈고학적 방법과 텍스트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텍스트분석 방법이 결합된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의 편제를 개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주희는 『대학』을 학문 방법론의 차원에서 이해하였고, 이에 따라 『대학』의 편제를 격물치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더 나아가 격물치지전을 보충하였다. 『대학』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격물과 치지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주희에 의해서 격물과 치지는 인간의 도덕적 수양 및 실천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인식론적 의미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 이후 『대학』을 둘러싼 논의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격물과 치지의 문제가 자리하게 되었고, 그만큼 격물과 치지는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는 개념이 되었다.
조선 유학사에서 보자면 격물치지에 대한 철학적 견해는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가 된다. 첫째는 주자학적 격물치지설로서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과 그 사물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공부,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독서와 토론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객관주의적이고 주지주의적인 격물치지설이다. 둘째는 양명학적 격물치지설로서 바깥 사물에 대한 탐구를 비판하고 오직 마음의 공부와 실천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주관주의적이고 실천적인 격물치지설이다. 이 두 격물치지설은 다같이 도덕적 실천을 위한 이론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주의이다. 셋째는 실학적 격물치지설로서 자연을 도덕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로 파악할 것을 주장하는 자연학적 격물치지설이다.
2. 중국유학의 격물치지설
『대학』의 격물과 치지에 대해 주목할 만한 해석은 일찍이 정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격’을 ‘오다’로 ‘물’을 ‘일’로 보았는데, 여기서 ‘물’이란 주희의 경우처럼 구체적인 사물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추상적인 의미의 일, 즉 ‘선한 일 또는 악한 일’ 정도의 뜻이다. 그 결과 ‘치지가 격물에 있다’는 구절은 선을 좋아하면 선한 일이 오고 악을 좋아하면 악한 일이 온다는 의미가 된다. 격물과 치지가 인식론적 의미를 지닌 철학적 개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송대에 와서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도의 실천을 적극 지향했던 도학자들에 의해 그 실천의 토대가 되는 형이상학적 체계가 모색되면서 『대학』은 학문 방법론을 다룬 책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 결과 격물과 치지는 수양론과 실천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인식론적 의미를 아울러 갖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장재는 지식을 감각적 지식과 도덕적 지식으로 나누고, 감각 경험의 한계와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다하거나 마음을 크게 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의식이 격물치지에 적용되면 외물에 대한 경계로 나타나는데, 그는 격물의 격을 ‘제거하다’ 또는 ‘밖에 두다’로 보아 격물을 마음에 있는 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감각적 지식의 습득보다 마음의 공부를 우위에 두는 사고는 정호에게서도 확인되는데, 그는 외부 사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미혹에 빠지게 되므로 외부 사물과 그에 대한 관념을 버려야만 참다운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정이와 주희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정이는 격을 ‘이르다’ 또는 ‘궁구하다’로 보아 격물을 ‘사물을 탐구하여 그 리에 이르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주희 역시 정이의 해석을 따라 격물을 사물에 나아가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에는 인식 대상인 리가 사물 속에 내재해 있다는 원리가 전제되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외부 사물은 버리거나 막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참된 인식을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할 대상이 된다. 외부 사물의 리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결과로서 지식의 습득을 필수적이라고 본다는 측면에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객관주의적이며 주지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물론 정이와 주희가 말하는 사물은 객관 존재 그 자체라기보다는 인간의 실천과 결부된 대상, 즉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리는 존재 그 자체의 법칙이라기보다는 실천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된 존재의 원리이며 실천의 원리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다분히 도덕주의적이다. 더욱이 주자학에서 말하는 사물의 리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고, 하나의 본질을 갖는다. 그리고 그 리는 단순히 바깥 사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도 존재한다. 정이와 주희의 격물치지설에서 외물의 탐구는 궁극적으로 관통貫通이라고 하는 일종의 인식론적 비약을 통해 우주적 본질을 인식하고 마음의 리를 인식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3. 조선유학의 격물치지설(주자학적 격물치지설)
조선 주자학자들의 격물치지설은 대개 정이와 주희의 격물치지설에서 출발한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인식 대상을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의 리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이황과 이이도 역시 격물을 ‘사물의 리를 궁구하여 그 사물의 리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정이와 주희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되면 인식의 대상은 마음 밖에 있는 사물의 리가 되며 인식의 주체는 나의 마음이 된다. 이에 대해 이황은 “리는 사물에 있으므로 나의 마음이 사물에 나아가 그 리를 궁구하여 그 극처에까지 이르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이는 “대개 온갖 일과 온갖 물에는 리가 있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마음은 온갖 리를 관리하므로 궁구할 수 없는 리는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마음 바깥에 있는 사물의 리를 인식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그 리를 인식하는 공부, 즉 독서나 강학과 같은 궁리의 공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자학에서는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물의 리는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리라는 특징이 있다. “사물의 리는 그 근본을 좇아 논하면 진실로 지극히 선하지 않음이 없다. …… 격물 궁리하는 까닭은 시비와 선악을 밝혀서 버리고 취하려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한 이황의 언급에서도 확인되듯이 주자학의 리는 다분히 도덕적인 것이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가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그 리가 자연의 객관적인 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그 리에 대한 탐구가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이도 인용하고 있는 정이의 언급에서도 확인되는데, 그가 리를 인식하기 위해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책, 인물, 그리고 실천 속에서 만나는 대상이었지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 사물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를 통해 인식해야 하는 리 역시 몰가치적인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의리, 시비, 마땅함과 같은 유가적 가치였다. 주자학의 리는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파악되는 자연의 리가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리였던 것이다. 이이가 “리를 궁구하는 데는 책을 읽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자연학적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성현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을 만하고 경계할 만한 선악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독서의 목적은 몰가치적인 지식의 습득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이는 읽어야 할 책으로 『소학』, 사서오경,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 등과 역사서 등을 꼽았는데, 이 책들은 자연의 원리를 담고 있는 자연학의 책이 아니라 삶의 원리를 담고 있는 인간학의 책이고 도덕학의 책이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의 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그 리를 탐구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환하게 관통하여 모든 사물의 리를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인식론적 비약인데, 그러한 비약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이론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서는 “마음 안에 모든 리가 갖추어져 있다”는 인식론적 원리와 “리는 하나이나 나뉘어져 달라졌다”는 존재론적 원리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 주자학에서는 리가 외부 사물 속에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 안에도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이황은 “다만 모든 사물의 리는 곧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리이니 물이 밖에 있다고 해서 이 리도 밖이라 할 수 없으며”라고 하였으며, 이이는 “사람의 마음에는 온갖 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요순의 인과 탕왕과 무왕의 의, 공자와 맹자의 도가 모두 성 안에 본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만물의 리가 마음 안에 있게 되면 외부 사물에 대한 탐구라는 객관적인 공부가 마음 안에 있는 리에 대한 자각이라는 주관적인 공부로 그 성격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모든 사물에 대한 탐구 없이도 모든 사물의 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다. 관통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참된 인식은 만물에 대한 분석적 인식이 아니라 통일적 인식이며 이론적 인식이 아니라 실천적 인식이다. 그러한 인식은 만물이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