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와 활동
김광림은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아버지 김창응과 어머니 김윤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光林’은 필명이고 본명은 ‘忠男’이다. 아버지 김창응은 대서업을 했지만 문학을 좋아해서 많은 문학서를 구입해 읽었으며 김광림은 부친의 책을 읽으며 문학에 관심을 키워가게 되었다. 송도중학 3학년 때 해방을 맞아 고향의 원산중학으로 옮겨 중학을 마친 후 평양종합대학(현 김일성대학) 역사 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사회주의적 획일성을 강요하는 교육체제에 환멸을 느껴 입학 한 학기만에 자퇴하고 말았다. 김광림이 문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구상, 이중섭 등이 관여하던 동인지 을 통해서였다. 구상, 이중섭 등을 통해 시에 대한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습작도 하게 되었다. 1947년 북조선 예술가 동맹에 의해 소위 ‘응향사건’ ‘응향’은 원산문학동맹에서 발행한 시집으로 강홍운, 구상, 서창훈, 이종민, 박경수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1946년 시집이 발간되자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회에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현실에 대해 회의적이고 퇴폐적이고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띠었다고 비판하여, 이후 북한에서 창작의 자유가 제한당하고 시인들이 규제되는 계기를 이룬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수록 시인들은 반동으로 몰리고, 구상은 1947년, 강홍운은 1·4후퇴 때 각각 월남했다.
이 터지고 시적 자유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한 환멸은 더욱 깊어졌다. 1948년 단신 월남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월남 후 여주의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 한국전쟁 발발로 징집되어 보병학교 장교과정을 거쳐 격전지(백마고지, 저격능선)전투에 참전하였다. 제대 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공부 사무관으로 출판과 KBS라디오 문예계장, 한국외환은행 등에 근무하였다. 1948년 에 「문풍지 」「벽」「석등」등의 시를 통해 등단하여 1954년에 「장마」「내력」등을, 에 「상심하는 접목」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저서로는 『상심하는 접목』『갈등』『천상의 꽃』등 15권의 시집과 1957년 김광림 ·전봉건·김종삼 3인의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등 합동시집 3권 일본 세이쥬사에서 ⑤와 ⑩ 두 권의 김광림 시집이 출간됐으며, 평론집으로는 존재에의 향수오늘의 시학아이러니의 시학현대시의 이해와 작법일본현대시인론시를 위한 에세이등과 다수의 수필집 및 번역서가 있다. 1992~199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보관문화훈장, 일본에서 재미교포 시인들의 박남수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중앙대, 한양대 출강에 이어 장안대 교수로 정년 퇴임하였다.
2. 작품경향과 변모 과정
김광림은 지금까지 여러 권의 개인 창작 시집을 간행하였다. 시세계의 변모 양상에 따라 그의 시를 4단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그가 직접 전투원으로 참전했던 전쟁 체험과 반전의식을 다룬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전봉건, 김종삼과의 합동시집, 1957)와 상심하는 접목(1959)의 세계
2단계. 서구 모더니즘에 경도되면서 이미지를 통한 명징한 세계를 탐구해 보여준 심상의 밝은 그림자(1962), 오전의 투망(1965), 학의 추락(1971)의 세계
3단계. 일상 현실 속에서의 좌절과 갈등의 문제를 다룬 갈등(1973), 한겨울의 산책(1976), 언어로 만든 새(1979)의 세계
4단계.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의 본질을 탐구해 보여준 바로 설 때 팽이는 운다(1982), 천상의 꽃(1985), 말의 사막에서(1998), 놓친 굴렁쇠(2001)의 세계가 그것이다.
3. 작품분석
1단계. 김광림의 초기시에는 거대한 전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짓밟히는 시적 자아의 비극이 노래되고 있다. 시적 자아가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현실 앞에서 자신이 처한 비극을 직시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광림의 시연구(2003년), 이건청(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20세기 한국시인론(2005년), 오세영, 도서출판 월인
한국 전후 문제시인 연구 04(2005년), 김학동 외 9인, 예림기획
김광림 시세계(2006년), 김광림, 푸른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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