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초토화작전’에 따른 대량학살의 배경과 전개, 성격
III. 4.3항쟁 성격의 소결과 과제
IV. 맺음을 대신하며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이 발표되자 여운형, 안재홍은 건국동맹을 모태로 하여 건국준비위원회를 수립하고 신속하게 전국적인 통치조직을 건설해 나갔다. 8월 말까지 건준은 전국 각지에 145개의 인민위원회를 설치하고 초기의 정국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미군의 진주가 알려지자 건준은 9월 6일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개최하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이를 기정사실화 하여 미군을 맞으려고 한다. 그러나 9월 8일 한반도로 진주한 미군은 9월 2일 하지의 포고문과 9월 9일 맥아더의 포고 제1호에서 일제의 식민통치기구의 존속을 발표하였다.
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이 결정이 한국에 알려지자 김구 중심의 임정세력은 즉각적인 반발을 보이면서 전투적인 반탁시위를 주도해 나갔다. 이승만과 한민당 세력의 반탁운동은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이승만은 미․소 냉전의 선망을 선취하여 어디까지나 반공을 기본으로 해서 신탁통치에 반대했던 것으로, 이승만의 이러한 입장은 좌익계가 반탁의사를 급작스럽게 철회함으로써 강화되었다. 미군정은 반탁운동의 분위기에 편승한 반공노선의 확산에 힘입어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를 전후한 시기에 우익강화와 좌익계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