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 원불교
증산교원불교
1.1 증산의 생애: 증산은 1871년 11월 1일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다. 7살에 부친의 주선으로 집에 훈장을 들여 천자문을 배웠다. 또한 증산은 어려서부터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는 나무 심기를 좋아하고 어린 초목을 함부로 꺾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부친이 하루는 벼를 말리는데 새와 닭의 무리를 쫓는 것을 만류하면서 “새 짐승이 한 알씩 쪼아 먹는 것을 그렇게 못 보시니 사람을 먹일 수 있나이까”하고 말했다. 여기서 증산이 ant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증산은 21세에 부모님의 뜻을 따라 정씨집안 처녀와 혼례를 한다. 24세 때에는 글방을 차리고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변의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상황들을 보고서 증산은 세상을 구할 뜻을 품고 주유의 길에 오른다. 그러나 증산은 당시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를 미리 알아차리고 관망만 할 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증산은 동학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후에 그를 따르던 무리들 중에는 동학교도였던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동학만을 가지고는 인간을 구제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의 종교 이념만으로는 혼란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모든 종교 이념을 통합시키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그의 사상 속에는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선도사상, 음양, 풍수, 도참사상, 유교의 인의예지신, 불교의 미륵불 출세사상, 동학사상, 기독교의 재림사상까지 포함된다. 여러 종교 서적과 서책들을 탐독한 증산은 27세에서 30세 되던 해까지 이곳 저곳을 주유하면서 피페해질 대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증산은 조상들의 공명첩을 불사르고 증산은 광구창생의 원대한 뜻을 품고 1901년 전라북도 모악산에 잇는 대원사에 들어가 49일 동안 불음불식하고 두문불출하며 공부하던 중 7월 5일 천지대도를 깨닫게 된다. 그 후 증산은 1909년 6월 24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포교활동을 하였다.
1.2 증산의 주요사상- (1)천지공사: 천지공사란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긴장하고 서로 짓밟아온 질서, 곧 상극지리를 마감하고 서로를 돕고 살리는 새로운 질서 상생지리를 만들어 모두가 잘사는 이상사회, 후천선경을 건설하기 위한 종교행위이다. 후천선경을 건설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되는 일이 해원이다. 새로운 세상은 그 동안 누적되어 있던 모든 원한이 사라질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2)해원상생사상: 증산은 현대사회의 모든 긴장과 갈등과 재앙은 선천시대의 원한이 맺히고 쌓여온 결과이므로 각각의 원통함과 억울함을 깨끗이 풀어서 천하의 원한 맺힌 신명들로 하여금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척을 짓는 일을 하지 말고 한마디 말이라도 덕을 쌓는 말을 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증산은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남이 잘 되는 일이 바로 내가 잘 되는 일이니 다른 사람 잘 되도록 힘써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3) 남녀평등사상: 증산은 조선조 가부장적인 유교사회의 남녀차별에서 오는 여성억압이 현재사회의 재앙의 원인이 됨을 지적하고 남녀가 평등한 사회의 도래를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다. 증산은 조선조의 잘못된 남존여비사상에 의한 여성들의 원을 풀어버리기 위해서 정음정양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유교의 잘못된 음양 원리에 의해 하늘은 건, 남자는 양, 땅은 곤, 여자는 음으로 구별하고 남성은 강하고 능동적이고 여자는 약하고 수동적이라고 규정햇다. 증산은 수천년 동안 음양론에서 오는 남녀의 불평등한 처우가 여자들의 한을 쌓아가게 하는 원인이라고 비판했고 정음정양을 통한 평등권을 주장했다. 천지공사에 오랜 세월 문제되어 왔던 청춘과부의 개가 문제도 해결한다. (4) 인존사상: 증산의 사상 중, 천지인 중에 가장 존엄한 존재는 인간이라는, 인존사상은 대표적인 것이다. 증산은 후천에는 인간이 가장 높임을 받는 인존시대가 열린다고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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