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이해
콜롬비아는 한반도의 면적의 4배, 인구는 4000만이며 메스티소 60% 물라토 14% 백인 20% 흑인 4%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백인들이 기득권층에 위치해 있다. 수도는 보고타이고 안데스 산지에 주로 대도시가 집중되어 있다. 적도와 근접한 위치에 있고 엘니뇨와 라니냐의 영향을 받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는 트랜스밀레니오라는 대중 교통수단이 있는데 전용 차로가 존재하며, 일반 지하철보다 이용 요금이 저렴하고, 전철이나 지하철 대신 160만명의 시민들의 운송 수단으로 이용되어 교통 체증을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9개 노선도에 114개의 운송장이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 내전의 역사와 상황
내전국가로서 콜롬비아 내전의 출발은 대토지 소유자들,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군부정권의 탄압에 대해 농민들이 반기를 든 데서 비롯한다. 1950년대부터 작은 자위단 규모로 싸워온 농민 무장집단들은 1966년 콜롬비아 혁명군(FARC)을 형성해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벌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콜롬비아 남부와 동부를 지배하는 혁명군이 전통적인 농민군 출신 지도자들로 구성되었다면 또다른 좌익 반군 국민해방군(ELN)은 쿠바혁명을 경험하고 돌아온 급진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1964년에 결성되었다. 체 게바라의 농촌 게릴라 전술을 따르는 이들은 특히 콜롬비아 석유자원을 수탈해 가는 외국 석유회사들을 공격목표로 삼고 송유관 파괴와 기술자 납치에 주력해 왔다. 콜롬비아 반군의 규모는 1만5천에서 2만 명 규모로 콜롬비아 국토의 40%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2001년까지 37년의 내전을 겪으며 국가적으로도 위기를 겪었고 치안 상태도 심각하다. 중남미 중에서도 평균 정도의 국민 소득을 가지고 있고 국민 소득이 3000만불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며, 세계적 추세에 따라 무선 전화 보급률이 50%가량이 되었지만 아직도 유선 전화 보급률은 전체 국민의 20%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어 통신 시설도 열악하다.
또 공권력이 통하지 않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전쟁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희생자의 수가 2만 5000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가 통하지 않아 언론인 살해 비율이 러시아, 알제리 다음으로 높다. 이념 갈등이 존재하고 있어 좌익 반군 지도자인 마누엘 마룰란다가 대통령인 안드레스 파스트라나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1997년 미 국방정보국(DIA)의 조사에 따르면 콜롬비아 정부가 정부군을 강화하고 반군들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는 이상 확실한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 콜롬비아 (정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콜롬비아는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에 동조해 한반도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한국전 참전에 대해서 콜롬비아 국민들의 여론은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정책에 대항하여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UN의 국제 분쟁 해결 지침에 따라 공산권 국가들과의 대외정책을 실시하고자 하였으며 미국을 민주주의와 자유 권리의 수호국으로 여김으로서 민주주의 정책의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한국전 참전 이후 콜롬비아 정권은 반공주의라는 이념을 통해 사회적 갈등의 실상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부정을 저지르면서 국민 의식의 보수화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콜롬비아는 현재 내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정치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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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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