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국가 볼프의 철학적 무정부주의
1. 예비적 고찰
2008년 상반기 대한민국의 화두는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 정권 초반부터 나라 전체가 정책에 대한 찬반양론에 휩싸여 많은 설전을 벌였고 이는 심지어 육탄전까지도 이어지곤 했다. 선거라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정치 권위를 획득한 현 정부가 왜 저항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 정부가 문을 연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퇴진에 대한 요구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현실은 과연 정부가 정당한 권위를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많은 기관과 조직, 단체들은 개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위(authority)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지배적인 조직이 국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가의 법을 지키는 문제를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간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국가의 권위는 그 명령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부과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권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유형에 속하는 ‘국가권위’는 언제든지 문제를 야기 시킬 가능성이 있다. 국가권위가 요구하는 내용과 개인적 판단이 요구하는 내용 사이에는 언제든지 갈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개인적 양심이 요구하는 것’과 ‘정치적 권위가 요구하는 것’을 동시에 무리 없이 수용하는 것, 두 가지 요구의 공존이 가능한지에 논의를 해 볼 시점이다. 과연 자율과 국가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인가?
2. 볼프의 ‘철학적 무정부주의’에 대하여
볼프의 견의에 따르면 권위가 절대적 특성을 갖고 있는 반면, 개인의 자율성은 절대적 권위를 인정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에 따르면 ‘권위’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즉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국가의 지배적 특징이 통치할 수 있는 권위이고 인간의 일차적 의무는 통치받기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율이라고 생각했을 때, 자율성과 국가의 권위 사이의 갈등의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논의에서는 만장일치의 직접 민주주의 상황이야 말로 개인의 자율성과 국가에 대한 복종이 공존 가능한 유일한 해법이 된다. 볼프는 직접 민주주의는 각 개인이 자율성에 근거하여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 법의 제정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만장일치제를 채택한 직접 민주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민주주의 국가는 대의제와 과반수결제 혹은 단순다수결제에 의하여 움직인다. 만장일치제의 민주주의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적 사안에 대하여 시민들의 선호를 취합하여야 하는데 정책적 사안들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에 따라 그 과정은 막대한 거래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체제하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논리에서만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공세적’ 논리에서 거부권이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으므로 순리와 상식을 존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고집에 양보하게 되는 ‘소수의 횡포’가 발현될 가능성도 있다.
볼프는 방어적 의미에서만 거부권을 행사하는 만장일치의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각 개인의 자율성이 보존될 수 있으나, 이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그리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정치적 권위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 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복종에 있어서 볼프는 그 의무에 대한 불인정의 논리를 자율성의 보존과 포기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제한한다. 예를 들어 권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한 A가 B에게 어떤 일 x의 이행을 명령했을 때, B가 A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x가 옳다고 생각해서 이행한다면 B는 자율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원이 복잡한 퇴근길에 교통경찰이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경찰의 권위에 복종함으로 정체가 풀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복종할 경우에는 회사원의 자율성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개인이 자신의 자율을 포기하는 것이 상식과 순리에 부합할 경우가 존재하는 경우이다.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자신의 개인적 판단을 정지하고 처방과 지침을 내리는 의사의 권위를 받아들인다. 이렇듯 개인의 자율성의 포기가 ‘순리적’이라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환자의 경우에서처럼 생활의 ‘전체’ 영역이 아니라 ‘제한’ 영역에서의 자율성의 포기가 이루어지거나(발목을 다쳐서 병원에 간 환자에게 의사가 축구를 하지마라는 지침을 줄 수는 있어도 책도 보지마라는 지침을 줄 수는 없는 것^^), 환자가 갖고 있지 못한 전문적인 지식을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경우로 제한되는 것이다.
볼프의 논의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국가나 그 법에 대하여 그 자체로서 당위론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를 찾는 것은 힘들다. 과연 볼프의 주장처럼 권위에 있어서 당위성은 획득할 수 없는 것인가?
3. 정치적 복종과 개인의 자율성
볼프의 ‘철학적인 무정부주의’가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긍정적인 메시지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개인의 자율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부당하다는 점이다. 맹목적 복종주의자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불의와 비리, 반인륜반인권적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볼프의 논의는 이렇듯 국가 권위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실현되는 것에 대한 반론의 논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죽으며 남긴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선택이 단순히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맹목적인 복종이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사형으로 몰고 간 법이 불의한 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법의 권위’에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저항하기를 거부하는 결단을 자율적으로 내렸기 때문에 그의 자율성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 이는 국가 권위에 복종하면서도 개인의 자율성 향유가 가능하다는 하나의 중요한 시사가 된다. 자율성이란 시민 개인이 자기 자신의 판단력을 통해 어떤 대안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결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자율성은 특정한 결정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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