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을 실천하다
무언가를 실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냥 흘러가는 것에 맞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맞는 것,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 현상유지가 아닌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기 위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은 어떻게 해야 잘하게 될까.
공부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책을 펴는 것이 어렵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해 타인을 이해해야함을 알고 있지만 막상 내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을 본다.
사실 한 학기 동안 공부를 했지만 아직도 실학이 뭔가라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하기 어렵다. 막연함에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실학이 뭔지, 나는 무엇을 실천해야하는지.
성경에 ‘믿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없던 것들인데 믿으면 정말로 이루어져서 내 눈 앞에 있다는 뜻이다. 마음의 믿음은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지만 또 가장 어려운 구절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실학이 그러한가 싶다. 누군가가 강렬히 진실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삶에 신념으로 만들어 실제로 실천하고, 또 타인, 더 나아가 세상에서 다 실천되기를 바라는 것. 과거부터 계속 사람들이 꿈꾸어 온 이데아처럼 현실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는 믿음에 맞닿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시대를 망라하고 실학자들은 원하는 것을 그리며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연구하며, 현실의 문제를 넘어서게 해 줄 답이라 생각되는 것을 신념으로 학문으로 구체화 시켰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신념을 위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밥도 먹여주지 않았던 것을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만약 이것이 어느 시대든 실학의 실천을 유지시켜 나갔다면, 그 반대편에는 항상 이런 신념, 실학의 쇠퇴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실학은 언제나 더 나은 방향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변화를 꿈꾸고 있어, 어찌되었든 그 시대의 권력과는 다른 방향의 구조를 가지고 운이 좋아 시대를 잘 만나면 변화의 흐름에 편승되면 권력과 변화의 중심에 실학자들이 서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시간이 지나면 그 실학은 빛이 바라고, 또 다른 실학이라 불리는 것들에 의해 없어지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과정에서 진정 실학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또 지금의 시대에 빗대어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시대의 진실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을 담은 실학에 대해 말할 것이다. 다른 시대와는 다른 지금의 시대에만 있는 실학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실학은 더 어렵고, 또 변하기 쉬운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그 형태를 뭐라 정의하기도 어렵다 생각이 든다. 익명성에 서로를 탓하고 서로에 대해 더 알기 어려운 지금 실학을 한다 말하고 하지 않는다 한들 누가 알겠고, 허울만 정치인이고 지식인인 이들이 진실이다, 실학이다, 실천해야 한다 라고 말한들 그 진실의 행방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사회의 병폐, 권력의 양상, 인간의 선악은 언제나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 실학을 실천하는, 할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실학을 실천하는 것, 작은 것부터 변화를 시작하는 것, 현실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금 주변을 볼 때 그리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욱 인간은 고뇌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을 지키려 하고 양심에 따르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는 고뇌에 휩싸이는 것 어쩌면 또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학을 실천한다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하고, 이런 실학을 사라지게 하는 것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항상 옳은 편에 설 수 없지만 생각을 깨우고 진실을 보는 힘을 길러 실천하려 하면 나도 언젠가는 실천실학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실과 거짓은 동전의 양면처럼, 실학(實學)과 허학(虛學)도 동전의 양면처럼.
수업시간에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고 생각을 사유하라는 말씀을 한 것이 최근 나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방법인 것 같아 실천하였더니 고민이 생겼다. 실천해야함을 알지만 하기 싫고 양심에 따라야 하건만 감정에 휘둘리고.. 어느 순간 고민에서 벗어나 생각을 그만하였더니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인간의 욕심은 어쩌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출생에서부터이지 않았을까. 최소한의 생각과의 사투에서 벗어나면 변하여지고 쇠퇴 하여지고 실천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찌 보면 야당, 그리고 좌파? 급진파가 실학과 더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있는 것을 누리면 지키려하고, 지키려 하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옳다! 맞다! 함에도 그 도(道)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서민처럼 사회에 반항하며 이 사회는 잘못된 것이라 행동하지만 그래도 넌 부르주아라 핀잔을 받았던 삼대의 덕기처럼 사회 지배층에서 내세우는 실학이라 부르는 것들은 어딘가 그 정신이 비어있는 것 같아 듣기 어렵다. 실천하지 못하는, 또 실천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실학이라 부를 수 없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그렇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맞는 것, 옳은 것,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이가 더 없고 모른다 하여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TV만 켜도 옳은 소리,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자들은 마땅히 실천해야한다. 그것이 크든 작든. 요즘 나타해진 내 삶이 그렇지 않기에 이 과제는 나를 더 어렵게 했다. 미루고 미루다 저번 주 주말부터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더니 겨우 이렇게 조금이나마 쓸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중 직장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가 실천해야 하는 것들의 반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보는 요즘의 나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몰라서 그런가.. 아니, 몸이 편해서이다. 정말 몸이 편해서인가? 아니 확신이 사라지기 때문이고, 실천을 함에 있어 장애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주변의 크고 동일한 목소리들이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이게 맞고 나는 실천한다 라고 표현하기 더 어려워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몸을 사리고서 생각만 명확한 채 누워있는 것이 어찌 보면 이 시대의 무기력한 지식인이고 소리 높여 변화를 지지하지 못하는 권력층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이기에 흔들리고 더 편해지려 할 때도 있지만 생각의 좌표를 확실히 잡아 지금의 실학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더 나은 내가, 그리고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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