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前漢의 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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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前漢)의 윤리사상
한고조는 중국을 다스림에 문사(文事)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문을 크게 장려하였다. 그런데 진화의 액[秦火之厄] 진시황제가 책을 불태운 사건을 말한다. =분서갱유(焚書坑儒)
과 항우의 병선[項羽之兵] 항우에 이르러 다시 한번 수난을 당하게 되는데 아방궁 속에 있던 책들까지 불에 훼손되는 사건
을 겪으면서 많은 중요한 전적(典籍)들이 사방으로 산실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당시의 학자들은 선진제가들의 학설을 수집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철학적 사색에 잠길 여유는 없기 때문에 독창적 사상을 내놓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사건 속에 가장 성행했던 사상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학설이었다. 묵가(墨家) 양가(楊家) 명가(名家)의 학설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고, 법가(法家) 병가(兵家) 등도 역시 미진하다. 오히려 이 당시에 특별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음양설(陰陽說), 오행설(五行說), 참위설(讖緯說)이 유행했다는 점이다.
1. 도가(道家)
전한 후한의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성행한 것은 도가의 학설이다. 조정은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실제 정치상에 실현하려 하였고, 백성들도 역시 그것을 따르려 하였다. 이를테면, 한고조가 법을 삼장(三章)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통일을 한 후 제정한 삼장(三章)의 법률. 진(秦)나라의 가혹했던 법률을 모두 폐지해버리고, 살인, 상해, 절도에 대해서만 지극히 간략하게 삼장으로 제정하여 백성들 이 모두 기뻐하였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으로 요약하고 진나라의 까다로운 법을 폐지한 것은 그것을 현저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아마도 한나라 초기 여러 해 동안 가혹한 정치와 병란에 시달려 삶의 문제가 매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무위자연의 설이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그러한 상황이 바로 도가의 설을 상하 모두가 선호하게 되었던 까닭인 것이다. 도가의 계통에 속하는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학자로는 회남자(淮南子)가 있다.
2. 유가(儒家)
한대의 학자들은 어렵게 유가의 고서(古書)들을 수집하여 연구에 매진하였다. 도가의 학문을 좋아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옛 성인들처럼 은둔하여 고담준론(高談峻論)이나 하는 것을 좋아하였지, 유서(遺書)들을 찾아 자세히 풀이하는 것을 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전한시대에 가장 유학이 성행한 시기는 무제(武帝) 때이다. 한고조도 비록 유가의 설을 듣고 유학의 필요성은 깨달았으나, 아직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장려하지는 않았다. 오직 무제(武帝)만이 가장 유학을 좋아하여 황노 및 백가의 설들을 배척하고 정통 유학자 수백명을 천거하여 등용하자 이름 있는 유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경(五經)중의 하나의 경전[一經]만을 전공하는 학자도 이 때에 나온 것이다. 한편 한대의 유학자들은 오로지 필생의 노력을 다하여 고서를 찾고 그것을 훈고하는 데 바쳤기 때문에 새로운 독창적인 학설은 없었다. 숙손통(淑孫通), 양웅(揚雄), 사마천(司馬遷), 한영(韓瓔), 유향(劉向), 유흠(劉歆), 환관(桓寬) 등이 대체로 전한대(前漢代)의 저명한 유학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동중서, 양웅을 제외한 나머지 학자들에게는 특별히 윤리학설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3.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음양오행설이 이 시기에 성행했다는 것은 특이한 사실이다. 음양오행설은 본래『역』(易)과 『상서』(尙書)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각종 기괴한 설(說)들이 붙여져 주말 전국시대 간에 성행하였다. 그것이 또 한대에 이르러 최고로 융성하게 되었는데, 당시 사상들은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상식적인 수준의 언설에 불과하여 실제로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괴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민심이 흉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괴설은 매우 설득력 있게 먹혀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민중들이 이에 미혹되었다. 그러나 사상사적으로 볼 때, 이 음양오행설은 실로 업신여길 수 없는 세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 전한대의 철학자
가. 회남자(淮南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