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진대(秦代)의 윤리사상 Ⅱ. 전한(前漢)의 윤리사상 Ⅲ. 후한(後漢)의 윤리사상
Ⅳ.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윤리사상 Ⅴ. 수대(隋代)의 윤리사상 Ⅵ. 당대()의 윤리사상
Ⅰ. 진대(秦代)의 윤리사상
서방으로부터 일어난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중국을 통일하고 일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때 시황제는 이사(李斯)를 등용하고 그의 견해를 따랐는데, 당시 학자들의 사상은 그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여, 조정의 시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속출하였고, 유학자들은 이사가 성현들의 유법(遺法)을 경시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여 그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이에 이사는 유학자들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 진시황에게 이들을 처치할 것과 언론을 억압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리하여 우민정책 문맹정책 [文盲政策]
을 시행하고, 460여명의 유생들을 갱살(坑殺)하는 사태가 벌어졌다(焚書坑儒). 진나라는 2대 황제에 이르러서 제국의 지위를 잃게 되었기에 매우 단명한 나라였다. 그래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군국주의적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오히려 학문의 발달을 저해하였을 뿐이다. 다만 당시의 학자들 중에는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내세운 자들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하여 둘 가치가 있다.
Ⅱ. 전한(前漢)의 윤리사상
한고조는 중국을 다스림에 문사(文事)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문을 크게 장려하였다. 그런데 진화의 액[秦火之厄] 진시황제가 책을 불태운 사건을 말한다. =분서갱유(焚書坑儒)
과 항우의 병선[項羽之兵] 항우에 이르러 다시 한번 수난을 당하게 되는데 아방궁 속에 있던 책들까지 불에 훼손되는 사건
을 겪으면서 많은 중요한 전적(典籍)들이 사방으로 산실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당시의 학자들은 선진제가들의 학설을 수집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철학적 사색에 잠길 여유는 없기 때문에 독창적 사상을 내놓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사건 속에 가장 성행했던 사상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학설이었다. 묵가(墨家) 양가(楊家) 명가(名家)의 학설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고, 법가(法家) 병가(兵家) 등도 역시 미진하다. 오히려 이 당시에 특별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음양설(陰陽說), 오행설(五行說), 참위설(讖緯說)이 유행했다는 점이다.
1. 도가(道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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