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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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 (Georg Cantor 1845~1918)
1. 수학자가 되기까지
게오르그 페르디난트 루드비히 필립 칸토어(Georg Ferdinand Ludwig Philip Cantor)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수학자는 1845년 3월 3일에 러시아의 페테스부르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예술적인 사람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순수한 유태인이었다. 아버지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태어나서 젊을 때부터 러시아의 페테스부르그에서 살았고, 칸토어가 청소년이 되는 1856년에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이주해서 살았다.
칸토어는 청소년기에 수학에 대한 굉장한 재능과 열성을 인정받았다.
대학에서 칸토어의 연구는 주로 그 당시의 관심사인 수론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주제로 논문을 쓰고, 1867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훌륭한 논문이긴 했지만, 훗날 집합론의 창시자가 되리라는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는 평범한 논문이었다. 집합론 발표 이전의 칸토어의 연구는 주로 수론에 집중되어 있는데, 특히 삼각함수(푸리에 급수) 이론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삼각함수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무한급수의 수렴에 관한 문제와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칸토어는 연속, 극한, 수렴 등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무한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2. 학문적 업적
집합론
1874년 칸토어에게는 아주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칸토어가 발리 쿠트만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신혼 기간을 보내면서 평생의 동지인 데데킨트와 자주 만나며 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의 일생일대의 업적이자, 수학이라는 학문을 새로운 낙원으로 이끈 집합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칸토어는 이 논문에서 모든 대수적 수의 집합에 관련된 예상하지 못했던 역설적인 결과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과 방법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서, 이 젊은 저자는 곧바로 놀라운 독창성을 가진 수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집합론의 발표로 인해서 많은 학문적인 적들을 상대해야만 했고, 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칸토어의 집합론이 심하게 공격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집합론에서 그때까지 금기시 되어오던 무한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칸토어 이전의 무한은 ∞로 표시되는 한 가지 무한뿐이었다. 이것은 유한이 아닌 상태를 표시하는 하나의 기호로 이해되었고, 수학자들 사이에 무한을 하나의 실체로 다루기 시작하면, 뭔가 기분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제논의 역설이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였다.
예컨대 을 로 계산함으로써 얻어지는 무한급수인
에 을 대입하여 얻는 등식은 다음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식이 된다.
-2=2+4+8+……
이렇게 무한이라는 존재가 있는 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하기에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라는 기호 속에 유한이 아닌 모든 존재를 쓸어 담아 놓고는 가능한 한 쳐다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