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우리가 느껴야 할 43 사건
-목차-
1.개요
2.4·3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3.4·3 평화공원을 통해 알아보는 현재와 미래
4.4·3의 드러나지 않은 흑막과 우리의 마음가짐
5.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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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앞서, 이 내용은 우리가 4·3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을 전제로 쓸 것이며, 본인이 4.3 평화공원에 직접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쓸 것이다.) 4·3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자 제주도 최대의 비극적인 역사’ 출처 : 제주4.3평화공원(일부 본인 작성)
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우리는 4·3 사건을 더 폭넓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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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4·3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겠다. 우선, 이 사건에 대한 국가의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앞서 이야기하자면,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이후의 이야기이고 일부 내용만 다룰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화 된 이후, 1990년대 중반~말쯤에 국가의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마침내 2000년 1월, 4·3 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10월 31일, 故노무현 前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다. 그 이후로도 4·3 에 대한 국가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4·3에 대한 공약을 내세웠다. 2014년 1월 17일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4월 3일을 4·3 희생자 기념일로 입법 예고하였다. 그리고 2014년 3월 24일, 4·3희생자 추념일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4·3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2007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4·3 평화공원 조성을 기념하여 베를린 장벽을 기증하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4.3사건 및 제주 4·3 평화공원
여기서 우리는 4·3사건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여담으로 본인은 어쩌면 제주도민의 대다수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그 전에는 민주당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가 4·3사건에 대한 대책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리고 이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문학적 요소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대표적으로 ‘순이 삼촌’의 저자 현기영은 국가에 궂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서 앞의 이야기에 대하여 국가에서 왜 그랬는지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 하자면 “국가가 만일 이러한 저항을 막지 않는다면 국가의 위상이 떨어져 국민을 통치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저항을 막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저항을 막는답시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윤리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사회학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정당하진 않지만 당연한 것 같다”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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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우리는 4·3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4·3 평화공원을 통하여 바라보는 4·3의 실태와 앞으로의 미래를 보자.(목차3의 이야기의 모든 출처는 4·3 평화공원임을 밝힌다.) 우선, 4·3 평화공원이 개관한 날인 2008년 3월 28일. 제35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김태환이 다녀왔고, 2010년 7월 31일. 제1회 전국청소년4·3역사체험교실 일동이 다녀왔으며 2011년 5월 17일, 공직40주년 문익순 4·3사업장이 다녀왔다. 그리고 2011년 7월 19일 제2회전국청소년4·3평화캠프참가자 일동이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4·3사건 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된 2014년 3월 24일, 유족회장 정문현 외 유족 일동과 4·3사업소장 김익수, 팀장 강창보, 팀장 박순흡 외 15명, 그리고 4·3 평화재단 이사장 이문교, 제36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우근민 등이 평화공원에 다녀왔다. 여기서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도민들은 아직도 4·3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본인이 역설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설명하자면, 사진 2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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