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윤리 진대秦代의 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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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I. 진대(秦代)의 윤리사상
서방으로부터 일어난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중국을 통일하고 일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때 시황제는 이사(李斯)를 등용하고 그의 견해를 따랐는데, 당시 학자들의 사상은 그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여, 조정의 시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속출하였고, 유학자들은 이사가 성현들의 유법(遺法)을 경시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여 그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이에 이사는 유학자들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 진시황에게 이들을 처치할 것과 언론을 억압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리하여 우민정책을 시행하고, 460여명의 유생들을 갱살(坑殺)하는 사태가 벌어졌다(焚書坑儒). 진나라는 2대 황제에 이르러서 제국의 지위를 잃게 되었기에 매우 단명한 나라였다. 그래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군국주의적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오히려 학문의 발달을 저해하였을 뿐이다. 다만 당시의 학자들 중에는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내세운 자들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하여 둘 가치가 있다.
II.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윤리사상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도덕이 완전히 무너지고 천자를 살해하는 난신, 적자들이 많았다. 사회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심이 염세적 사상으로 젖어 들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가 이러한 경향을 타고 점점 깊숙이 보급되었다. 남북조 시대에는 불교가 왕왕 군주의 존경과 신임을 아 정치적인 세력을 얻기도 하였다. 남북조 모두 불교가 융성했다는 사실은 중국 역사상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특히 남조의 양무제는 즉위 초에는 명군으로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폈으며 남조시대 불교를 공전의 전성 시대로 만들어 황제 보살로 불려지기도 하였으나 만년에 이르러서는 부정 부패를 막지 못해 자신은 물론 국가까지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 육조시대의 유교
1) 유교시대의 유학자
(1) 부현(傅玄)
부현은 순수하게 공, 맹주의적 정치도덕을 고취하였다. 그는 ‘믿음’(信)을 매우 중히 여겼다. 즉 그는 “화중에 믿지 않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믿지 않으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면 모든 사람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물며 천하야 어떠하겠느냐” 라고 말했다.
(2) 도연명(陶淵明)
원래 유교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염세적인 일면이 있었다. 그의 염세적 인생관은 종종 그의 시속에서 엿보인다. 그의 학설에 의하면 인생이란 기우(寄寓)에 불과한 것으로 마치 시장의 소음과도 같이 하나도 그 근본 뿌리란 없는 것이며, 살아 있을 때 쾌락을 구할 뿐인 것이다. 그의 인생관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의 저서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도 이상적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3) 안지추(顔之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