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불교가 융화하고 티벳 토착종교인 본교(Bon Religion)가 가미되어 티벳 밀교가 만들어졌다. 부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은 같으나,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대승불교와 차이가 많다.
입으로는 진리의 음성으로서 진언(眞言 mantra)를 염송하고, 명상해야 할 형상으로서 만다라(曼茶羅 mandala)를 마음에 새기며, 인체의 움직임으로서 좌법(座法), 호흡, 수인(手印 mudra)등을 종교의례로 삼아 수행한다.
티벳 불교의 역사
티벳 사람들의 핏줄에는 태어날 때부터 불교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티벳의 문화란 불교문화라고 할 만큼, 티벳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는 불교가 스며들어 있다. 그이들을 여유 있고 자비롭게 만드는 티벳 불교의 성격은 어떤 것일까, 과연 다른 나라의 불교와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티벳 불교는 인도의 정통 불교를 이어받았다고 말한다. 티벳 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와 밀교가 함께한다. 티벳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교가 인도 불교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티벳 불교가 다른 나라의 불교와 겉으로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티벳에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갈 때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 불교와 뵌교의 싸움
티벳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송첸감포 왕 때의 일이다. 작은 부족들이 흩어져 있던 티벳 고원을 통일해서 티벳 왕국을 처음 세운 이가 송첸감포였다. 그 당시의 티벳 사람들은 전투를 즐기던 유목민족이었고 무속신앙의 일종인 “뵌교"라는 토속 종교를 믿고 있었다. 티벳의 넓은 자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자연의 어디에나 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산마다 산신들이 있고, 강에는 강의 신이 있고, 우물에는 우물의 신이 있다고 믿는 원시적인 자연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뵌교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액을 막는 무속신앙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로부터 전해진 불교는 티벳 사람들에게 바로 수용될 수가 없었다.
왕가를 중심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다가 8세기 후반에 이르러 티쏭데첸 왕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인도의 고승들을 초청해서 불교 교리를 전파하고, 나라에서 관리하는 번역청을 만들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티벳어로 번역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다. 왕은 불교 사원들을 많이 세우고 티벳 승려들을 배출하여 경제적으로 충분한 후원을 해 주었다.
티벳에 처음 들어온 불교문화는 티벳 민중이 좋아하는 요소들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티벳 점성학의 바탕에는 고대 뵌교의 점성학의 요소가 들어 있다. 티벳의 불교종파들은 뵌교의 점성학에 쓰였던 용어들을 불교 사상에 맞는 용어로 바꿔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여러 약초와 나뭇가지를 태워 신에게 향기와 연기를 바치는 의식이나 실로 엮어서 만든 집 모형 속에 악신들을 가두어놓고 장애를 막는 의식을 비롯해서, 티벳 불교와 다른 나라 불교가 구별되는 여러 불교의례들은 모두 뵌교 의식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뒤 티벳은 인도 불교를 근본으로 해서 수행법과 교리들을 배우게 되었다. 9세기 전반의 랄빠첸왕(본명은 띠쭉데첸)도 불경 번역 사업을 더욱 활발히 하고, 사원과 승려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었다. 뵌교의 잔존세력들과 결탁한 귀족들은 랄빠첸 왕을 암살하고 그이의 형인 랑다르마를 왕으로 앉혔다. 그이는 사원들을 모두 파괴하고 승려들을 환속시키거나 백정으로 만드는 들 하여 극심한 불교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이 또한 한 불교승려의 손에 암살되었다.
랑다르마 이후 백 년 동안 티벳에는 공식적인 사원이나 승려들이 없었다. 랑다르마 또한 별명인데, “도깨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도깨비 왕은 머리에 뿔이 있었고, 혀가 없었기 때문에 뿔을 가리기 위해서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티벳 사람들은 악마가 랑다르마로 태어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들은 랑다르마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면 모자를 한 손으로 들어올리면서 혀를 쭉 내민다. 그것이 티벳 사람들의 인사법으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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