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 의원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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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죽음은 삶 의원 동력이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죽음은 삶의 원동력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죽음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죽음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발표에 앞서 죽음에 대해 정의 내릴 필요가 있는데 죽음에 대한 철학은 주간적이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웠던 주제였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한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들의 서로 다른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다. 무신론자는 죽음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한편, 유신론의 기독교는 영혼의 삶을 불교의 경우 윤회의 삶을 믿는다. 이 세가지 경우중 어떤 것을 죽음이라 정의해야 할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한 예로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진위성에 대한 논의는 인류역사이래로 지금까지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죽음에 대해 정의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무의미 한 것은 아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삶의 원동력이 된다. 죽음이 인간에게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에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죽음은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때론 어린아이는 죽음을 알지 못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너무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은 아이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슬퍼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 경우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츰 언어를 학습하고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어느세 죽음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이 때 죽음에 대한 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가지게 되는 삶의 대한 인간의 태도는 한결같다.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에게 시간에 중요성을 느끼게 되고, 최단시간에 최상의 행복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살게된다. 이 때 최단시간에 행복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죽음은 불확실성을 지녔기 때문이고, 언제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 결과 인간은 노력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성취하고 싶어 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 타인과 경쟁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 한 예로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즉 불가피하게 행복을 위해 경쟁하게 되는데, 이 때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경우 인간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성악설은 주장한 철학자 칸트는 인간은 타인의 행복을 보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바가 있다. 앞에서 말한예가 그런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인간은 죽음으로 인해 한정된 시간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한정된 시간내에서 노력하고 타인과 경쟁하면서 행복을 성취하기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약 노력하고 경쟁하지 않는다면, 오늘과 같은 진보가 있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동물모다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 지구상에서 멸종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바이다. 인간이 오늘날 만물의 영장으로 설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해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죽음은 다양한 형태로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앞에서 죽음을 두고 무신론자의 죽음, 기독교론자의 죽음, 불교론자의 죽음 세가지로 정리하여 말하였다. 이 때 죽음의 의미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는데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론자의 죽음의 의미는 육체의 죽음이며 영적부활이다. 이 때 영적부활은 신앙을 가진사람에게만 귀속된다. 이 때 신앙적인 삶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져있는 성경인데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원을 위해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둘째, 불교론자의 죽음의 의미는 현세의 삶을 토대로 환생이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삶이 내세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현재의 삶에 자비와 인정을 배푸는 것이 내세에 더 낳은 삶을 제공하므로 현세의 삶에 자비를 배푸는 것이 이들에겐 삶의 원동력이 된다.
셋째, 무신론자의 죽음의 의미는 현세의 삶이 전부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세의 종교적 가치에 구속받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신념이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죽음과 보상심리
유신론과 무신론 모두 죽음이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가지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보상심리의 작용이다. 유신론자는 신을 통해 현세삶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단 차이가 있다면 기독교는 사후의 삶을 통해 불교는 내세의 삶을 통해 보상을 받고싶어한다는 점이다. 반면 무신론자의 경우 보상심리를 기대할 수가 없다 자신이 자신에게 보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보상심리가 인간의 삶의 모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경우도 있는데 보상심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유신론자들이 선행을 행하는 경우가 무신론자에 비해 많은 편이며, 보상심리를 기대할 수 없는 무신론자의 경우 유신론자들에 비해 절박한 현실에 닥치게 될 경우 자살할 확률이 높은 편인 것을 예로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