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8세기 예언서: 아모스, 호세아, 미가
1.역사적 배경
기원전 9세기에 흥왕했던 앗시리아가 반세기 만에 쇠락하자, 8세기 중반에 이르러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6-746)와 남유다의 웃시야( 783-743)는 각기 영토를 회복하고, 인접 지역들과 국제적인 수출입 무역을 통하여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과 동시에 장기 통치로 각각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745년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기원전 745-727)가 즉위하여 서진 정벌정책을 재개하면서 이 지역의 황금시대는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북 이스라엘은 745년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부터 호세아까지(브가히야는 제외) 모두 반역을 일으키는 혼란의 시대를 겪는다. 므나헴은 앗시리아에 엄청난 조공을 바치며 봉신국으로 잔류하려고 하였으나, 반 앗시리아파인 베가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암살하고 왕으로 등극하였다. 베가는 아람의 르신과 반 앗시리아 동맹을 맺고, 유다의 아하스(기원전 735-715년)를 반 앗시리아 동맹에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하스가 머뭇거리는 동안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이 유다를 침범했고, 아하스는 이사야의 조언을 무시한 채 앗시리아에게 원조를 청한다. 호세아(기원전 732-724)는 베가를 암살하고 애굽과 결탁하여 앗시리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살만에셀 5세(기원전 726-722)의 공격을 받고,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는 무너지게 되었다.
한편 남 유다 히스기야(기원전 727-698)는 앗시리아가 약해진 틈을 타서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신바벨론제국의 므로닥발라단의 앗시리아 반란에 가담하였으나 701년 산헤립의 공격으로 유다 전역은 초토화 되고, 예루살렘만 간신히 남게 되었다. 8세기 중반 예언자들은 당시 사회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빈곤한 모순된 사회를 경험하는 현실을 직면하고 야웨의 이름으로 심판의 신탁을 전하였다.
2.예언 시기, 예언 대상, 시대 상황
아모스
호세아
미가
예언 시기
주전 8세기 중반 (남유다 웃시야와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통치 시기)
주전 748(여로보암 2세 통치)~722(사마리아 멸망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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