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몰락 후 의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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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신정권 몰락 후 의무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무신정권 몰락후의 무반
1.무신정권의 해체
庚午政變 (1270.5)이 원종의 밀지를 받은 임연의 인척 洪文系 와 宋松禮가 林惟茂의 집으로 쳐들어가 임유무를 주살하고 그 측근들을 제거한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하여 100년 동안 이어져 온 무신정권이 소멸하고 왕정복고가 실행되었다.
원종11년 5월 몽고로부터 歸國途上에 있던 왕이 개경으로 출거할 것을 엄명하였으나, 집정 임유무가 이에 따르지 않고 도리어 몽고병에 대한 방비에 힘을 쓰니, 마침내 임유무의 매부인 御史中丞 홍문계와 直門下省事 송송례는 삼별초를 움직여 임유무를 誅殺하고 그 일당을 유배하였다.
그러면 이 경오정변의 성격을 해명하기 위하여 우선 주체세력의 성분을 분석하여 보겠다.
임유무 주살의 주모자는 어사중승 홍문계와 직문하성사 송송례이고, 직접적인 실행자는 송송례의 아들인 衛士長 송염과 송분이며, 동원된 병력은 삼별초이다. 송송례는 김준, 임연정권에 참여한 무인이었고 송송례는 원종 5년 5월 김준의 上奏에 의하여 삼랑성 신니동에 가궐을 창건할 때 장군으로 종사한 일이 있는 무인이다(고려사절요 권 18).
송염, 송분은 모두 위사장으로 무인이었으니 이들 송씨일가는 순수한 무반 가문임을 알 수 있다. 또 한사람인 홍문계는 임연의 이고 임유무의 妹夫였는데,그의 관직은 어사중승으로 그가 문반출신인지 또는 무반인자 不明이나 임유무의 친족이 주로 무인출신이고 또 충열왕 5년 정월에 왕이 몽고에 가서 경오정변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대장군 송송례와 장군 홍문계가 임유무를 誅하였다하여 홍문계를 장군이라 하였으며 高麗史節要 卷 20, 忠烈王 5년 正月條
따라서 경오정변에 참여한 주체세력은 모두 무반계이고 결코 문반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충열왕 7년 12월 교에는 임유무 誅의 공신으로 송송례, 홍문계, 송분과 더불어 대장군 김지저를 기하고 있다. 이 김지저도 무인이니 경오공신은 모두 무반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경오정변에 동원된 삼별초를 보더라도 이는 무인측 이었다.
홍문계, 송송례 등이 임유무를 주살한 것은 무인들이 무신정권을 顚覆한 사건으로 전에 김준이 최의를 誅하고 또 임연이 김준을 誅한 것과 그 성격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사건과는 본질적인 성격의 차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원종 11년 이후에는 거사 주체자에 의한 執政의 존재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종래에는 거사의 주모자가 관직을 초천하거나 또는 특수직을 帶有하고 무인집권으로서의 초월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그와 같은 무인집권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것이다. 그것은 임유무의 誅戮의 중심이 되었던 사람이 거사후 가졌던 관직과 지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송송례와 홍문계가 원종 11년 8월 삼별초의 叛狀을 秦하기 위하여 세자 諶을 수행하여 몽고를 갔을 때 송송례는 상장군이고 홍문계는 중승이었으니 高麗史節要 卷 18, 元宗 11年 8月條.
이때는 성사후 3개월이 되었는데도 이들은 별다른 승진이 없었고 또 교정별감의 특수직도 차지하지 않고 있어서 이전의 무인집권과는 판이한 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홍문계는 그 후 우부승선에 임명 되었으나 辭하고 高麗史 권106, 홍규전에는 좌부승선이 되었다 하지만 고려사 세가와 고려사절요의 원종 12년 2월조에는 우부승선 홍문계가 사직하였다고 되어있다.
다시 원종 13년에 추밀원부사가 되었지만 역시 辭不就하고 그 후 전토에서 20여년이나 屛居하여 아예 政柄에서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변태섭, 1971,『고려정치제도사연구』,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