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타는 전도자의 형성(Making)
존 웨슬리는 링컨셔의 엡워드에서 1703년 6월 17일에 태어났다. 그런데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활동하던 18세기의 영국을 먼저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당시 웨슬리가 처했던 상황과 교회를,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의 가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웨슬리 시대의 사회적 / 종교적 배경
웨슬리의 활동 무대였던 18세기의 영국은 정치와 교회가 깊은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를 알려면 정치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적 배경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튜도르(Tudor)왕조의 두 번째 왕, 헨리(Henry)8세(1509-1547)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이룬 종교개혁을 통하여 영국은 종교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상황으로 진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정을 통하여 웨슬리에게 미친 간접적인 영향도 지대하였기 때문이다.
헨리8세가 주도한 종교개혁은 원래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에게는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에, 이혼과 재혼의 문제는 중대사이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헨리 왕은 마침내 영국 교회를 로마교회로부터 결별시키고, 그 교회의 수장이 되어 영국의 정치와 종교를 동시에 통치하면서, 영국의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1530년대에 시작된 이 개혁이 미진(未盡)하여 아직도 로마교회의 잘못된 찌꺼기가 남아 있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후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는 비국교도와 개혁된 교회를 옹호하는 국교도 간의 종교적 갈등이 정치와 깊게 연루되어, 시간이 갈수록 첨예한 대립으로 나타났다. 국교도와 비국교도의 양극화는 정치가에 따라 요철현상을 일으켰다. 헨리 왕의 아들 에드워드(Edward)6세는 보다 의미 있는 종교 개혁을 이루었으나,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헨리의 딸, 메리(Mary)여왕은 가톨릭교회로 복귀하려 했고, 그 결과 많은 비국교도를 핍박하였다.
그 후 엘리자베스(Elizabeth) 여왕은 “공동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공예배에서 사용하게 하고, “삼십구 조례”(Thirty Nine Articles)를 교리로 채택하였으나 그런 결정은 비국교도의 불만을 일으켰다. 웨슬리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영국교회를 정화하며 동시에 정부를 순수하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교회를 순결하게 환원시키며 성경적인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는 정부를 만들려는 노력 때문에 이들은 “청교도”(Puritan)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반면에 그 후의 왕들은 비국교도와의 정치적 갈등과 내전까지 불사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운 내규(內規)들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과 “관용령”(The Toleration Act of 1689)사이에서 비국교도는 확고하게 주체성을 얻게 되었고, 결국 영국 국교도와 비국교도는 각기 다른 생활양식을 지닌 각기 다른 진영이 되어 버렸다. 존 웨슬리의 부모 사무엘(Samuel)과 수잔나(Susanna)도 영국국교의 회원이었으나, 그들도 역시 비국교도 곧 청교도의 가정에서 성장하여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존 웨슬리도 영국국교회와 청교도의 특성을 다 갖게 되었다. 스케빙톤 우드는 이러한 특성을 잘 표현하였다.
“웨슬리의 청교도 유산이 아무리 인상적이라 할지라도, 그의 직접적인 유산은 영국교회에 대한 헌신이었다. 사실상 웨슬리에 대한 단서는 이러한 혼합된 영향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형성에는 영국국교회와 청교도가 융합되었는데…곧 영국국교의 질서와 위엄 그리고 청교도의 불굴의 창의성과 금욕주의가 융합되었다.”
2) 부모의 영향
존 웨슬리에게 미친 부모의 영향은 지극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절제를 배운 사람이었다. 이처럼 무서울 정도의 절제가 없었다면 1739년부터 죽을 때까지 52년의 긴 기간동안 어떻게 말을 타고 225,000여 마일을 여행하면서 40,000여 회의 설교를 하며, 열정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었으며, 그토록 많은 저술, 번역, 편집 등 방대한 자료를 남길 수 있었겠는가?
엡워드의 영국국교의 교구 목사였던 아버지와 절제의 생활방식을 어려서부터 심어준 어머니 수잔나의 엄위 수잔나는 그 유산을 본이 되는 가정생활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전수하였다. “그녀의 엄격한 시간표, 하나님 앞에서의 묵상과 자기성찰을 위한 규칙적인 시간, 영적 일기의 기록, 안식일의 엄수-이 모든 것은 그녀의 생활 ‘방법’(Methodis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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