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크로체 수리오의 미학 이론
헤겔의 미학
1. 정신의 오디세이
아주 오랜 옛날 인간도 없고 공룡도 없고 시간도 공간도 없던 시절, ‘이념’이라는 어떤 커다란 정신적 존재가 살았다. 이건 물론 나의 정신도 당신의 정신도 어느 누구의 정신도 아니다. 그냥 우주 창조의 원리인 ‘로고스’라 해두자. 신이라고 해도 좋다. 어느 날 이 절대자가 갑자기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어진다. 어떻게 하지? 물론 자신의 모습을 바깥으로 투사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바깥으로 쏟아부어-이걸 ‘외화(外化)’라 한다-자기가 아닌 다른 게 된다. 이게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결국 절대자의 다른 모습인 셈이다. 이념은 자신을 쏟아부어 물리화학적, 생물학적 자연을 만들고, 마침내 그 창조의 정점에서 인간을 낳는다. 인간은 특이한 동물이어서 정신을 갖고 있다. 결국 자연 속에서 다시 정신이 탄생하는 셈이다. 인간의 정신은 발전하여 마침내 사실은 자연이 이념의 다른 모습이며, 이 모든 게 절대자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때 스스로 자연이 되었던 이념은 원래의 자기로 복귀한다. 이렇게 자신을 인식하려고 스스로 다른 게 되었다가 다시 자기한테 돌아오는 ‘정신의 오디세이’. 이게 바로 우주의 역사다.
2. 논리, 자연, 7정신
헤겔은 이 과정을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논리학’은 이념이 아직 자신을 바깥으로 쏟아붓기 전의 상태를 다룬다. 우리는 대개 자연이 먼저 있고, 거기서 추상화를 통해 자연 법칙이나 판단 범주가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 생각이 맞다면 헤겔은 물구나무 서 있는 셈이다. 헤겔에 따르면 이념은 자신을 외화해 ‘자연’이 된다. 가령 당신 속에 예술적 재능이 있다 하자. 그 뛰어난 재능도 아직은 추상적 가능성일 뿐이다. 가능성을 실현하려면 그걸 밖으로 끄집어내, 그림 속에 옮겨놓아야 한다. 이념도 마찬가지다. 이념도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그걸 밖으로 끄집어내, 자기 아닌 타자, 즉 자연이 된다.
유기체의 정점엔 인간이 서 있다. 인간은 정신을 가진 존재로, 그의 몸 속에서 정신과 물질은 통일을 이룬다. 인간의 역사는 정신 발전의 역사이며, 이 역사 속에서 절대자는 오랜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다시 자기한테 돌아간다. ‘정신 철학’은 이 과정을 다루는데, 여기에도 세 단계가 있다. 먼저 ‘주관정신’이다. 이건 개인들의 의식이 성장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된다. 이어서 개인을 초월한 ‘객관정신’이 등장한다. 이건 어떤 사회적인 정신 원리, 말하자면 도덕이나 법이나 인륜 따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 양자가 종합을 이루는 곳에서 마침내 ‘절대 정신’이 탄생한다. 여기서 이념은 더 이상 출발하기 전의 추상적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실현한 구체적 존재가 된다.
3. 예술, 종교, 철학
절대정신은 다시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사실 예술, 종교, 철학은 예부터 인간이 진리를 발견하고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헤겔에 따르면, 이 가운데서 예술은 이념을 ‘감각’의 형태로 드러내고, 종교는 ‘표상’의 형태로 드러내며, 철학은 ‘개념’의 형태로 드러낸다. 마치 몸이 크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절대정신도 성장함에 따라 감각과 표상과 개념으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다. 예술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다시 철학으로 이 운동의 마지막 단계인 철학에서 마침내 이념은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자기한테 돌아가게 되는데, 헤겔은 이 여정이 자기 머릿속에서 끝났다고 믿었다. 자기가 절대지(絶對知)에 도달했다는 거다. [논리학:유론, 본질론, 개념론, 자연철학: 역학, 물리학, 유기체론, 정신철학: 주관정신, 객관정신, 절대정신: 예술, 종교, 철학]
4. 이념의 감각적 현현
예술은 절대적 진리를 드러내는 매체다. 헤겔은 이렇게 이념이 예술 속에서 감각적 형태로 드러난 게, 곧 ‘미’라고 보았다. 진정한 미란 곧 예술미다. 물론 예술 밖에도 미는 있다. 가령 자연의 아름다움 말이다. 하지만 헤겔이 보기에 자연은 이념의 그림자일 뿐 아직 주관성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의 아름다움은 완전한 게 못된다. 이런 자연미의 결함에서 예술미의 필연성이 나온다. 예술은 자연미의 결함을 제거해 완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특히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형상 속에서 이념이 빛날 때, 헤겔은 이를 ‘이(념)상’이라 했다.
5. 상징예술(건축), 고전예술(조각), 낭만예술(회화, 음악, 시)
헤겔은 이념이 감각적 형상과 관련을 맺는 양상에 따라 예술의 발전을 다시 세 가지 단계로 나눈다. 상징예술, 고전예술, 낭만예술이 그것이다. 먼저 상지예술은 이념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물질적 매체에 압도당할 때 발생한다. 고대 동방과 이집트의 조각들이 바로 이 시기에 속한다. 영혼은 아직 육체의 모든 부분에 생명을 두루 불어넣을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때문에 체격은 근엄함을 띠지만 다리는 자유롭지 못하고, 팔과 머리는 몸체에 붙어 있어 생동감이 없다. 내용과 형식이 통일을 이루지 못해 예술은 뭔가 ‘숭고’한 느낌을 준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이념은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하고 어렴풋하게 암시만 할 뿐이다. 때문에 예술은 수수께끼 같은 성격을 띠고 일종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이념이 더 성숙하면 상징예술은 종말을 고하고 고전예술이 시작된다. 이제 이념은 충분히 구체적으로 되어, 감각적 형태 속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이념은 감각적 매체와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 시기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 시대다. 헤겔은 이상적 아름다움이 그리스 조각에서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그리스 예술에서 예술은 정점에 도달했다는 거다. 여기서 헤겔 미학의 고전주의적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이는 아마 빙켈만의 영향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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