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 전 수운 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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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경대 전 수운 최제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동 경 대 전
1. 동경대전을 쓴 인물 - 최제우
가. 최제우
제우(濟愚)는 35세 되던 해에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최제우는 최옥이 63세 때에 곡산(谷山) 한씨(韓氏)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재가녀(再嫁女)의 자식이라는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익혔고, 13세에 울산 출신의 박씨(朴氏)와 결혼했다. 그러나 10세에 어머니를 잃고, 17세에 아버지마저 죽자 3년상을 마친 뒤 1844년부터 1854년까지 각지를 유랑하였다. 이 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후 최제우는 1860년 5월 7일 득도(得道)를 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다.
그는 포교를 위해 ‘용담가(龍潭歌)’, ‘안심가(安心歌)’, ‘교훈가(敎訓歌)’,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도덕가(道德歌)’, ‘흥비가(興比歌)’, ‘검결(劍訣)’ 등의 한글 가사(歌詞)를 지었고, ‘포덕문(布德文)’,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불연기연(不然其然)’ 등 한문으로 된 글들을 남겼다. 그의 한문 저술들은 1880년 최시형에 의해 으로 편찬되었으며, 한글 가사들은 이듬해 로 묶여 간행되었다.
나. 최제우의 사상
최제우는 오랜 방랑으로 농민의 현실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에 사회 현실과 민중의 요구에 기초한 새로운 사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는 한국 전통의 경천(敬天) 사상을 기초로 유(儒)ㆍ불(佛)ㆍ선(仙)과 도참사상, 후천개벽사상 등의 민중 사상을 융합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서학(西學)에 대립된 것으로서, 그는 “나 또한 동쪽에서 태어나 동도(東道)를 받았으니 도(道)는 비록 천도(天道)이나, 학(學)은 동학(東學)이다”(논학문)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도를 닦는 순서와 방법을 ‘지기금지(至氣今至) 원위대강(願爲大降)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의 21자로 나타냈다. 이는 “지극한 기운이 오늘에 이르러 크게 내리도록 빕니다. 천주(天主)를 모셔 조화가 정해지는 것을 영세토록 잊지 않으면 온갖 일을 알게 됩니다”라는 뜻이다.
2. 동경대전
가. 포덕문
포덕문은 ‘덕을 펴는 글’이란 뜻으로 동경대전의 처음 시작 부분이다. 포덕문에 써진 내용으로는 크게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혼란의 시대상과 수운 최제우, 자신이 한울님을 만나고 득도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서세동점 즉 서양이 동양을 지배할 것이라는 위기의 상황을 극복할 의지가 표현되어있다.
포덕문에는 우주가 처음 생긴 이래 사계절이 순환하고,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은 한울님이 ‘우주 만물을 낳고 기르고 변화시키는 신비한 자취가 온 세상에 뚜렷하고 밝게 나타난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최제우는 자연의 움직임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연의 움직임이 하늘의 존재가 인간 세상에 흔적을 남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을 위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않고 살고 있어서 돈 때문에 사람들 간에 사이도 나빠지고 폭력으로 남을 해치기까지 하는 사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