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3 사건이란 무엇인가?
1.1. 4.3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간단히 말해 정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토벌대’와 공산당 세력인 ‘무장대’ 서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상대편으로 몰려 학살당한 사건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두 가지 사상이 공존했다. 남쪽에 있던 이승만 세력은 ‘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북쪽에서 자리를 잡은 김일성 세력은 ‘공산주의’를 지향했다. 그래서 남쪽에 있는 ‘공산주의’ 단체들은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이승만 세력과 미군정의 눈을 피해 숨어서 당 활동을 했다. 대표적인 당이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인데 제주도에도 남로당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4.3 사건의 처음 발단이 된 것은 3.1일 제주도 관덕정 마당에서 열린 집회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이가 치이는 일이 발생하자 제주도민 6명이 돌멩이를 던지며 경찰에 항의하는 상황에서 6명의 주민이 총살된 사건이 발생한 이후이다. 이 때 무장대는 이 사건에 반발해 제주도민의 95%로가 참여한 3.10 총파업을 주도한다. 그 이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미군정에서는 경찰과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대거 동원하였다. 여기서 동원된 경찰과 서북청년회 4.3 사건에서 학살을 자행한 주요 집단이다.
경찰은 일제시대 때부터 기득권을 행사하던 세력이고 ‘서청’이라 불리우는 서북청년회 단원들은 공산주의 체제의 반발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극우세력이었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좌익으로 의심되면 테러를 일삼았고 경찰과 더불어 ‘뇌물 수수, 공갈, 보호명목의 갈취’ 등 부정행위를 일삼아 주민들의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를 명분으로 ‘무장대’ 세력은 경찰관, 경찰 가족, 서청을 포함한 우익 세력들을 지목하여 납치, 살해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한에서는 ‘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에서는 ‘공산주의’를 바탕으로 김일성이 정부를 수립한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공산당 세력인 ‘무장대’가 일으키는 이러한 사태들을 자신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드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테러와 공산당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축출 작전이 시작되었고 무장대 세력 또한 이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뚜렷한 증거없이 적으로 몰아 죽임으로써 대량학살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1.2. 사회심리학적 관점으로 본 4.3사건의 요인
- 논문 대량학살의 심리(권귀숙. 2006.『기억의 정치』. 문학과 지성사. pp. 71~107 )를 바탕으로
논문 대량학살의 심리에서는 4.3사건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을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그 요인들을 분석한다.
이 논문에서는 대량학살에 영향을 미친 주요한 사회심리학적 요인으로 배제 정책, 권위화, 일상화, 비인간화 과정을 언급한다. 밑에 표에서 각 요인들에 정의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4.3사건의 두 가해자 집단인 무장대와 토벌대의 학살에 각 요인들을 적용해 설명하고자 한다.
배제정책
‘우리’와 ‘적’을 구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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