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문화의 의미

 1  레포트 - 문화의 의미 -1
 2  레포트 - 문화의 의미 -2
 3  레포트 - 문화의 의미 -3
 4  레포트 - 문화의 의미 -4
 5  레포트 - 문화의 의미 -5
 6  레포트 - 문화의 의미 -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레포트 - 문화의 의미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문화의 의미
※ 읽기 자료 1. 완전한 사회란 없다
완전한 사회란 없다. 각 사회는 그것이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불순물을 그 자체 내에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 불순물은 구체적으로는 숱한 양의 잔인 · 부정, 그리고 무감각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이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 것일까? 민족학적 조사가 여기에 대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적은 수의 사회를 비교하면, 서로서로가 매우 상이한 것처럼 보이게 되지만, 조사의 영역이 확대되어 나감에 따라서 이 차이점들은 점점 감소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어떤 인간 사회도 철저하게 선하지는 않다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 사회나 근본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는 겉으로 보아서, 어떤 일정한 수효의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 일부 구성원들까지 포함한 모든 성원들에게 어떤 이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사회층이란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어떤 타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모든 조직적 노력에 장애물이 되는구성원이라 볼 수 있다.
이 말은 여러 민족의 ‘야만적인’ 습관을 알게 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습관적인 여행 서적의 독자들을 놀라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사실들이 정확하게 해석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재정립되기만 한다면, 이 같은 피상적인 반응들은 즉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야만인의 모든 관례들 가운데서 우리들이 가장 끔찍하게 혐오하는 식인 풍습을 예로 들자. 우리는 다른 고기가 모자라기 때문에 서로를 잡아먹는 경우에는 폴리네시아의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제외시켜야 한다. 도덕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사회도 굶주림으로부터 나오는 요구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다. 우리가 나치의 학살 수용소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아사할 지경이 되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지 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식인 풍습의 긍정적인 형태들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조상들의 신체의 일부분이나 적의 시체의 살점을 먹음으로써 식인종은 죽은 자의 덕을 획득하려 하거나 또는 그 힘들을 중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의식은 종종 매우 비밀스럽게 거행되며, 그들이 먹고자 하는 그 음식물을 다른 음식물과 섞거나 또는 빻아 가루로 만든, 유기물 약간을 합해 먹는다. 그리고 식인 풍습의 요소가 보다 공개적으로 인정되었을 때일지라도, 도덕적인 근거에서 그러한 습관을 저주한다는 사실은, 시체의 물질적인 파괴에 의해서 위태로워질 어떤 육체적 부활이나 또는 영혼과 육체의 연결과 여기에 따르는 이원론의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러한 확신들은 의식적인 식인 풍습의 의미로 시행되고 있는 것에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편이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식인종을 비난하는 이유인 죽음의 신성함에 대한 무시의 정도는, 우리가 해부학 실습을 용인하고 있는 사실보다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만약 어떤 다른 사회의 관찰자가 조사하게 된다면, 우리들 자신의 어떤 관계들이 그에게는 우리가 비문명적이라고 간주하는 식인 풍습과 유사한 종류로 간주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의 재판과 형벌의 습관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이것들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되는 사회형을 구별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즉 식인 풍습을 실행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중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변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자기네의 육체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리들 사회 같은 두 번째 유형의 사회는, 이른바 앙트로페미(anthropemie : 특수한 인간들을 축출, 배제해 버리는 일)를 채택하는 사회이다. 즉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여 그들은 정반대의 해결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끔찍한 존재들을 일정 기간 또는 영원히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것이다. 이 존재들은 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시설들 가운데에서 인간성과의 모든 접촉을 거부당한다. 우리가 미개적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회에 있어서 이런 관습은 극심한 공포를 일으킬 것이다. 그들이 오직 우리와는 대칭적인 관습들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들을 야만적이라고 간주하듯이 우리들 자신도 그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여 지게 될 것이다.
(C.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역, 『슬픈 열대』, 한길사, 1998, 356~358쪽)
※ 읽기 자료 2. 매체와 문화
언어 표현이 전자의 방식으로 변화됨으로써, 한편으로는 쓰기에서 시작된 그리고 인쇄에서 의해서 강화된 말과 공간과의 관련이 더욱 깊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차적인 구술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화로 의식이 이행되어 왔다.
전자적 장치들에 의해서 인쇄본이 조만간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점점 더 많은 인쇄물이 생산되고 있다. 전자를 이용하여 테이프 녹음된 인터뷰는 무수한‘대화’본이나 ‘대화’기사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책이나 기사는 테이프녹음이 가능하기 전까지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미디어는 옛미디어를 보완해 준다. 그러나 물론 신 미디어는 일부러 비형식적인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냄으로써 구 미디어를 변형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활자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은 구술로 주고받는 것은 보통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얼마 안가서 사실상 대부분의 인쇄는 어떠한 방식으로나 전자 장비의 도움을 빌려 행해지게 될 것이다. 컴퓨터는 말과 공간 및 위치 운동과의 관련을 극대화하고 분석적인 순차적 배열을 거의 순간적으로 실현함으로써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전자 기술은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가지각색 녹음테이프에 의해서 우리를 ‘2차적인 구술성’의 시대로 끌어 넣었다. 2차적인 구술성은 그 속에 사람들이 참가한다는 신비성을 가지며, 고유한 감각을 키우고, 현재의 순간을 중히 여기는 한편, 나아가서 정형구를 사용하기조차 한다. 그러나 이 구술성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층 의식적이고 스스로를 의식하는 구술성이며, 쓰기와 인쇄의 사용에 끊임없이 기초를 두고 있는 구술성이다.
2차적인 구술성은 1차적인 구술성과 매우 유사한 동시에 별로 유사하지 않다. 1차적인 구술성과 마찬가지로 2차적인 구술성은 간한 집단의식을 낳았다. 왜냐하면 말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렇게 해서 듣는 청취자를 하나의 현실적인 청중, 즉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차적인 구술성에 속하는 사람들이 외향적인 것은 내면을 향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밖을 향하고 있는 것은 거꾸로 지금까지 우리가 내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연설과 오늘의 연설을 대조해 보면, 1차적인 구술성과 2차적인 구술성과의 대조가 뚜렷해질 것이다. 1858년의 링컨과 더글라스의 토론에서 두 사람의 전사는 종종 타는 듯한 일리노이의 여름 태양 아래서 거칠게 반응하는 12,000~15,000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각각 한시간 반 동안이나 연설하였다. 최초의 연설자가 한 시간, 다음 연설자가 한 시간 반, 이어서 처음 연설자가 반론을 위해 30분 연설했다. 매차례 싸움이 끝날 때마다 토론하는 두 사람의 목은 쇠고, 그들의 육체는 지치고 말았다. 오늘날 대통령 후보자들의 텔레비전 토론은 예전 구술성세계의 토론과 매우 다르다. 후보자들은 좁고 작은 자리에 편히 앉아서 짧은 정견을 말하고, 논쟁적인 것도 상당히 둔화되어 듣기 좋은 회화로 주고받는다. 전자 미디어는 인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폐쇄의 감각에 완전히 지배되어 있다. 절대적인 쇼는 폐쇄된 세계와 그 세계에 잘 들어맞는 통제력을 깨뜨릴지도 모른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백 년 전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연설이나 대담을 주요 공인들로부터 듣는다. 그러나 그들이 듣는 것으로 해서, 전자 시대 이전부터 2천 년 이상이나 그 역사를 갖는 예전의 연설을 상기할 수는 없으며, 또 그러한 연설이 있었던 구술적인 생활양식과 사고 구조를 떠올릴 수도 없다.
(월터 옹, 이기우 외 역,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문예출판사, 1995 204~208쪽)
※읽기 자료 3. 문화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에게는 이제 모어 공동체 문화를 이을 고리가 끊어졌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소년의 캠프에 해당하는 문화의 장도 상실되고 말았다. 저항의 근거로서 나 잔신의 문화란 소년의 경우처럼 명확하지 않다. 내게 문화란 선험적인 것이 아니다. 지난 11월 3일 현대 음악계의 위대한 작곡가 중 하나인 윤이상이 망명지 베를린에서 죽었다 그의 자서전 상처입은 용에는 그의 음악적 모어에 깃등 풍요로운 기억들이 펄쳐진다 어릴 적 고향의 항구에 배를 띄우고 귀기울였던 어부들의 노래, 떠돌이 극단이 들려주던 악극. 신들린 무당이 불러대던 서경가, 주문, 기원 등등, 이러한 조선의 민중적 예술과 음악은 조선어와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지하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었지만, 그의 음악적 모어로 줄곧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윤이상이 언젠간 “생각할 때에는 무슨 말로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서 “모르겠어요. 전에는 일본어로 생각했죠”라고 답한 적이 있다. 황민화 정책으로 인해 그와 같은 세대의 조선인이 경험했던 상처의 깊이와 그 그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황민화의 압력은, 조선반도에서는 반세기 전에 종말을 고했지만, 해방 후 일본에 남겨진 제일조선인에게는 지금까지도 그 본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다시 내게 있어서 조선 민족의 음악적 모어는 거의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의 음악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음악이 내 의식 밑바닥에 마멸되어 가면서도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아득한 ‘문화’의 파편을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이상이 서구의 전위적 기법을 사용한 것은 조선의 전통적 음악을 유럽의 근대가 이른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근대 속에서 문제가 된 ‘인간의 조건’을 응시하며 이 근대 자체를 묻기 위해서”였다. 윤이상의 예술은 단순한 ‘문화’의 재현이나 그것으로의 회귀가 아니며, 또 자신의 음악적 모어를 단순히 현대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