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도가철학과 무위자연
1. 노자 『도덕경』
노자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 책은 원래 다른 모든 고대 철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자」라는 제명(除名)이 붙어있다. 그것은 맹가(孟軻)의 저작을 「맹가(孟軻)」라고 하고 순경의 저작을 「순자(荀子)」라고 하고 또한 장주의 저작을 「장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덕경』이라는 책명은 한나라 시대에 붙여진 것이다. 그 결과 『도덕경』은 오래전부터 “경(經)”으로 불려왔던 유가의 저작과 대등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본래 직물의 날실을 뜻하는 “경”이라는 글자는 이 시기에 이르러 “도덕의 기준이 되는 성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경전은 모두 탁월한 가치를 지닌 도덕적 교훈을 지니고 있다. 곧 경전은 성인(聖人) 또는 신(神)이 계시한 성스러운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막스 칼텐마르크 지음, 장원철 역『노자와 도교』 까치, p26
내재적인 측면에서 보면 『도덕경』은 문체나 사상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체의 측면에서 보면 운을 단 운문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문장이 있다. 운문의 운을 조사해보면 여러 가지 불규칙한 사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불규칙성은 『도덕경』의 본문이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입증해준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상당 부분의 문장이 고대인들이 그렇게 받아들였고, 또한 『도덕경』의 내용의 주류를 이루는 노담의 사상과는 다른 경향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이한 내용들은 누군가가 잘못 집어넣은 것으로 보기보다는 처음 『도덕경』의 본문이 성립되던 초창기의 사정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도덕경』은 제자백가의 원천이라고 할 초기 고대의 지혜 및 원도가(原道家)에 해당하는 여러 유파들로부터 각각 일정량을 빌려온, 격언과 경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경」이 기원전 6세기에 노담에 의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도덕경」이 현재 전해지는 형태로 언제, 어느 곳에서, 누구에 의해 편집되었는가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해야만 한다. 또한 「도덕경」은 상당 부분이 혼합적인 집(潗)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형태상의 이러한 부정합성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의 내용은 치밀하게 구상된 하나의 사상 체계를 반영하며, 전체적으로 보아 일관성이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경』의 성립에 결정적인 사상적 영향을 미쳤을 한 위대한 사상가의 존재를 상상해볼 수 있다. 바로 그 위대한 사상가의 이름을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 노담 내지 노자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해야 할 이유는 달리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논의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도덕경』의 작자를 노자 또는 노담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자 한다. 그러나 노자라는 명칭은 실제로는 여러 명의 사상가를 지칭하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기원전 3세기 초엽의 사람으로 여겨지는 마지막 인물이 현재 전하는 『도덕경』의 본문을 확정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막스 칼텐마르크 지음, 장원철 역『노자와 도교』 까치, p.28~31
2. 노자가 말하는 도(道)
“천지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만물을 추구(芻拘)로 여긴다. 성인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 이 주장은 유가에서 “하늘의 뜻은 인(仁)이다”, “성인은 인의 실현자다” 하고 말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에 대하여 어떤 자애의 감정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인간의 일에 대하여 무정하고 냉담합니다. 도는 공평무사하여, 선인이니 악인이니 아름다움이니 추하니 하는 인간적 기준들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다고 합니다. 김교빈·이현구 지음,『동양철학에세이』 동녘, 2002 p53
“도는 비어 있는 듯 하나 그 작용은 가득 찬 듯 도는 아닌 듯하다. 깊고 아득하여 마물의 근원이며, 맑아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른다. 하느님보다 먼저인 듯하다.” 김교빈·이현구 지음,『동양철학에세이』 동녘, 2002 p57
도는 천지 만물의 생성과 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런 근원적 법칙성 입니다. 신영복 지음,『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돌베개, 2007 p271
노자의 도는 인간적인 감정이나 의지가 없습니다. 인간의 기대나 의지에서 독립하여 존재 합니다. 도란 인간의 역사에 관여 한다고 믿어온 상제를 부정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면서 만물의 근원 입니다. 감각에 들어오는 만물은 총괄하여 ‘있는 것(有)’에서 나옵니다. ‘있는 것’은 인간의 감각에 잡히고 인간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한정 된 것입니다. 도는 인간이 한정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 무한한 것,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한 성격을 ‘무(無)’라고 하였습니다. 도는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무엇에서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립’한다고 하고, 그러한 성질을 ‘자연’이란 말로 표현 하였습니다. 노자는 세계를 설명하는 범위를 넷으로 크게 나눈 다음 그 사이에 단계를 두었습니다. 인간과 땅과 하늘은 결국 도를 본받지만, 도는 더 이상 본 받을 것이 없고 스스로 그러한 존재입니다. 김교빈·이현구 지음,『동양철학에세이』 동녘, 2002 p56~57
도(道)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는 윤리적인 강상(綱常)의 도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최대한의 법칙성 즉 우주의 자연의 근본적인 운동 법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미의 도라는 것은 노자가 의미하는 참된 의미의 법칙, 즉 불변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 못 됨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라는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 우리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노자는 개념적 사유, 즉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부분에 대한 인식이며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인식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드러난 현상의 배후에 무(無)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노자의 도(道)와 명(名)은 서양의 사유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유는 개념적 사유라는 것이 서양의 논리지요. 개념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 칸트의 인식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인식 주체인 인간의 선험적 인식 구조에 의하여 구성될 뿐입니다. 신영복 지음,『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돌베개, 2007 p269~270
3. 장자 『장자』
장자(壯者)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제 1편 「소요유(逍遙遊)」이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이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舞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동작 그 자체가 목적이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신영복 지음,『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돌베개, 2004, p311
장자의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는 도를 터득하여 이를 실천하는 노자의 경지가 아니다. 오히려 도의 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소요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無待),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無碍) 경지가 장자의 절대 자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신영복 지음,『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돌베개, 2004,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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