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과 복수
들어가는 말
‘복수’라는 낱말의 뜻은 ‘해(害)를 받은 본인이나 그의 친족, 또는 친구 등이 가해자에 대해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이다. 이러한 복수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늘 다루어져 왔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으로 최서해의 홍염이 있고, 서양의 작품인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복수이야기가 다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은 복수에 대해 쉽게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누구나가 자신 안에 복수심을 내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신 안에 내제되어 있는 복수심을 영화로 만든 것이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이다. 박찬욱 감독은 5년에 걸쳐 자신만의 스타일로 복수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그가 말하고 싶은 복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본고에서는 박찬욱 감독과 그의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복수의 변모양상과 더불어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박찬욱
박찬욱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 졸업하였다. 김용태 등과 함께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 출신이며 영화평론가로도 알려져 있다. 예술영화, 작가영화로 출발해 장르영화를 거쳐 B급영화, 컬트영화 등 다양한 영화에 애정을 표해온 그는 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데뷔했다. 장르영화의 구조와 관습을 살짝 비튼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영화광 출신 감독의 지향을 드러내며 일단의 지지자를 얻는 데 성공했다. 두번째 영화 3인조(1997)는 무장강도가 된 두 남자가 자기 아이를 찾으려는 한 여자를 도와주면서 겪는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도달할 때마다 웃음을 유발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현실이 우습지만은 않다는 것을 관객에게 던져준 슬픔이 베어있는 코미디라고 한다. 그리고 2000년 드디어 공동경비구역 JSA로 국내 흥행기록 갱신은 물론한국 영화를 대표할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얻으며 한국 영화의 21세기를 대표할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베를린 영화제 본선 진출의 쾌거 속에 해외 영화 관계자들로부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한국 영화붐의 든든한 견인차가 되었다. 그 뒤 복수는 나의것을 통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두터운 매니아 층을 만들고, 그의 영화적 신념을 확실히 하였으며, 최근 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고있는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복수 시리즈를 완성했다.
복수, 그것의 변모
먼저 2002년에 개봉된 복수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돈에 의한 복수이며 2003년에 개봉된 올드보이는 말에 의한 복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박감독은 현대 사회에서 사적인 복수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하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동진은 경찰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고 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15년 동안이나 감금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살인자라고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경찰에 가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고 수사를 요청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복수는 그 형태 또한 매우 폭력적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모든 주인공들이 피할 수 없는 어떤 사슬 같은 것에 얽매이는 것을 다루고 있다. 도무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라는 범주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런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복수를 부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폭력으로 원한이 일어나고 그 원한을 폭력으로 갚으려고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려 보면 동진은 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기 딸이 죽었던 방식으로 같은 곳에서 죽이고 동진도 살해당하고 만다. 즉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박찬욱 감독이 그리는 ‘복수’이다. 이것은 올드보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우진에 대한 언어폭력이 다시금 이우진이 행하는 오대수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나고 감독의 복수에 대한 생각이 다시 재현되는 순간이다. 즉 폭력이 연쇄될 수밖에 없는 사회와 개인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것이다. 좀 더 범위를 넓힌다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도 언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사독재와 그에 항거하는 사람들, FTA협상을 반대하는 농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전투경찰들의 모습들이다. 이런 사회의 모습에 대한 감독의 은유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그의 복수시리즈가 끝났다면 관객의 입장에선 매우 거북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복수, 그리고 돌고 도는 폭력의 악순환이 복수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에 이르러 구원의 방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이금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를 받고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전도사가 건넨 두부를 거절하고 자신이 만든 흰 케익에 얼굴을 박는다. 전도사가 제시한 세상의 보편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속죄를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즉, 폭력을 통한 속죄이다. 박찬욱 감독은 폭력일지언정 복수의 연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이렇게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의 변모 양상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는 복수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고발하고 폭력을 통한 끊이지 않는 복수의 연쇄를 말하였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에 와서 그러한 복수가 구원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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