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불교 철학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불교는 고려조를 통해 그 절정을 누렸다. 고려시대 불교의 중요성은 사원이 갖는 사회경제적인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고려 왕실과 귀족들은 원당(願堂)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사원을 경영하였고, 거기에 토지를 투탁하는 형식으로 재산을 증식하였다. 불교는 사회통합이라는 긍정적 기능을 한 측면도 있지만, 대규모 불교 의례와 주술의 도입은 잡다한 신앙행태와 불교의 수행법을 혼동케 함으로써 불교 자체의 초월적 성격을 약화시키고 고려불교의 현세구복적 경향을 강화하였다.
고려시대 불교계의 사상적 과제는 선종과 교종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이는 사상계의 분열과 함께 정치세력의 분열을 통합하는 길이었다. 천태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도 당시 사상계의 현안이었던 선교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심재룡 외 편역『고려시대의 불교사상』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p1~3
의천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사상
의천은 당시 고려 불교계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종파간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천태종을 개창하게 되었다. 의천은 1099년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게 되었다. 의천의 천태사상이 지니는 독자성은 한 마디로 교관병수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의천은 무엇보다 3승의 가르침이 우월함을 주장했다. 3승의 가르침이란 불교를 3단계로 분류하여 분석한 것이다.
의천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3승의 가르침이 공자의 가르침이나 노장의 학설과 같이 인승과 천승에서는 일치하지만 출세간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어찌 공자나 노장의 가르침과 더불어 말할 수 있으리오”라고 말하며 어느 종파나 주의 주장에 얽매이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소의 소신을 드러낸다.
또한 단편적이긴 하지만 의 제법실상론과 상통하는 사상을 보이고 있다. 제법실상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참다운 가치와 존재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즉 “우리가 둘이 아니다. 미혹하면 번뇌와 생사에 헤매고, 깨치면 열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마음에 미루어 생각하면 물질이 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본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말해 적절한 표현 방법이 없다는 고백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흐르는 물소리나 새의 지저귐은 부처님의 설법이며, 나무 돌 등의 형상 있는 것들은 모두 법신불의 화현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스럽고 아름다운 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미혹한 중생에겐 번뇌를 일으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보살에겐 만 가지 수행이 된다고 본다.
의천은 사상의 대립보다는 융화를 강조한 원효를 높이 존경하였다. 원효는 불교를 종파나 주의 주장으로 구별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원효는 그가 저술한 이라는 책에서 “일체의 부처님 가르침은 한 맛의 깨달음에 들어간다.” “모든 것은 일승이다.”라는 말로 종파적 대립은 무의미하며 이익이 없는 것을 밝히고 있다. 원효의 입장에서 본다면 화엄종이다 선종이다 법상종이다 하면서 자기가 소속된 종파의 우월성을 논의한다는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이며 우물 안의 개구리가 하늘 넓은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천은 이러한 원효의 화쟁불교의 사상적 영향권에서 독자적인 사상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확립한 사상체계가 일삼삼관의사상과 회삼귀일사상이다.
일심산관의사상이란 화엄종의 수행법으로서 실천수행과 이론적인 교리 조직을 말한다.
심재룡 외 편역『고려시대의 불교사상』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의천『대각국사』밀알, 2000
『보조 지눌의 사상과 영향』보고사, 2008
『한국철학 에세이』동녘, 2012
토론주제
1. 불교는 범신론적으로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평등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에는 자연을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고 인간 외의 만물을 하등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을 평등한 존재로 봐야하는가?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봐야하는가? 무엇이 옳은가?
2. 지눌에게 있어서 돈오란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단박에 깨우친 것이고 점수란 돈오에 의하여 끊임없이 닦는 것이다. 지눌은 만일 깨우치지 못하고 수행만 한다면 그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 하여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입장을 강조하였다. 이에는 그 이전에 점수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돈오 후에 점수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3. 의천은 불교에서 교리체계인 교(敎)와 실천수행법인 지관(止觀)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교관겸수를 주장했고 지눌은 불교적 수행의 요체는 정(定)과 혜(慧)에 있고 정과 혜는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고루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를 주장했다. 의천의 교관겸수와 지눌의 정혜쌍수의 차이점을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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