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후문학의 한계와 그 극복
전후 상황은 처참했다. 한국전쟁이 가져온 정신적 상처와 우울 등은 인간들을 폐허화된 현실 속으로 내몰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사람들은 부조리한 질서에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순종하며 살아갔다.
여기서 작가들은 이런 인간 전체에 대해서 근본적이 회의를 느꼈다. 또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195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경향인 ‘전후문학’이다.
- 전후문학의 한계
폐허화된 현실 자체는 전후세대의 작가들에게 삶의 터전이었고, 또 문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면서 작가들의 의식 속에는 언제나 불안과 절망이 표출되었다. 먼저 박경리는 “불신시대”를 명명하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신대, 그리하여 어느 것도 신뢰할 수 없는 시대를 표현했다. 또 김성한, 선우휘, 오상원 등은 이에 정면 대결하는 의식의 치열성을 보여주었다. 손창섭이나 장용학은 철저하게 부정의 정신으로 일관했으며, 전광용, 이호철, 김광식 등은 풍자적인 시선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전후문학이 드러내고 있는 저항 의식은 한계성을 지녔다. 먼저 첫째는 저항 의식의 본질이 긍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자기 논리의 파행성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신적 지향 자체가 자기 인식과 현실 상황에 대한 자각을 통해 얻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암울한 시각으로 인하여 전후 현실의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저항의 대상이 막연하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기성세대이거나 사회 윤리적인 문제였는데, 이러한 저항 의식은 역사적 구체성을 획득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과념의 유곡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전후문학이 이런 한계성을 지니는 가운데, 오늘날 작가에게 맡겨진 바가 있다. 첫째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려는 정신이다. 둘째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애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셋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적과 그의 벗을 명확히 가리켜주는 일이다.
이제 작가는 비와 바람과 같은 ‘자연성’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 스스로의 ‘손’, 그 인위성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여 일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것을 그대로 하거나, 바꿀 수도 있는 일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역사에 의한 살육이 자연에 의한 살해보다 더 참혹한 일이다.
이어령은 역사와 운명에 대한 작가의 책임을 ‘저항’이라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전후현실에 대하여 막연한 감상보다 휴머니즘의 정신을 내세워 이간 회복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어령은 끝내 실천적 행동성을 유보해 두고, 언어를 통한 창작적 투쟁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작가의 저항이라는 것도 결국 언어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어령의 주장은 전후문학의 한계성을 벗어나 대상으로서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문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논리가 되었다.
전후문학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성으로 기존의 문학적 관습에 대한 반발과 그 파괴를 들 수 있다. 전후의 시단에는 기존의 전통적 서정성을 거부하고 지적인 요소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현대시의 내면을 추구하는 노력이 널리 확산되었다. 해방 직후에 강조되었던 순수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의 방향이 흔들리면서, 기성 문단의 권위도 부정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전후세대의 평론가들로부터 문학적 전통 단절의 심각성을 문제 삼는 견해가 나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령은 문학적 전통의 불모성 또한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조연현, 조지훈, 김동리 등의 주장과 대립됨으로써, 전통 문제에 대한 논의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폭넓게 확산되었다. 그렇지만 전후세대의 비평이 전통의 부정론으로만 치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폐허 위에서 전통의 새로운 창조를 꿈꾸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관심사가 되었던 실존주의에 대한 논의나 그 경향이 휴머니즘의 부박한 변형처럼 보인다거나, 문학적 자기 인식의 불철저를 드러내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당시의 전통에 대한 관심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전후문학은 여러 가지 상황적 한계에 부딪혔다. 민족의 분단과 대립은 1950년대 이후 민족사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문학의 영역에서는 공산주의 이념 문제는 건드릴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세대 작가들은 완강한 정치적 질서와 이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당시 사회의 경직성이 자유분방한 문학적 상상력을 그만큼 억압하고 있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1950년대 문학이 전쟁의 현실 그 자체를 포괄하지 못하고 후방적 상황에 매달려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가능하지 않다면, 한국전쟁의 성격이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