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생명윤리 및 철학 과제-비판적사고
< 생명윤리와 철학 과제 - 1 >
성적 소수자를 위한 변화의 시작
(경찰이 ‘게이 사우나’ 단속한 이유는?)
이 기사는 지난 달 경찰이 게이 사우나를 단속했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강남 경찰서에서 게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우나 업소를 검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사는 그러한 사우나가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속의 사우나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사우나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에서도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우나든 게이 사우나든 말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성매매업소라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러한 생각은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있는 고정 관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사 속에서 게이 사우나가 실제로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고, 왜 생겼는지의 이유까지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익한 기사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그런 정보가 없었다면 분명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게이 사우나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만을 하고 사고를 끝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이러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깊이 부분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표면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단편적 원인을 제시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된 해결책까지는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한국의 사회가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편견과 시선이 그들을 사우나라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편견에 대한 대응으로 이러한 눈속임수와 같은 사우나를 선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기사 속에서의 사우나의 운영자들 또한 자신들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 항의하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는 그들에 대한 편견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이에 대해서 당당하지 못해서 이기도하다. 비록 사회의 편견이 날카롭다고 하지만, 그들 스스로조차도 자신의 성적 소수성에 당당하지 못하다면 도대체 누가 그들의 정당성을 이해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계속 사우나 속에서 만난다면 사람들은 계속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들은 더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자유로운 새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법이다. 사람들의 편견을 떠나서 사우나가 아닌 사람들이 그들이 정당한 만남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줄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의 의식개선이다. 한국 사회가 성적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본인이 아니라 가족 중에 성적소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제약을 받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자유와 세계화가 가장 큰 화두인 현대 사회에서 과연 이러한 편협한 사고만이 옳은 것일까? 물론 개인이 가진 생각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불쾌감은 무의식적인 불쾌감에서 비롯된다.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받길 원하고, 또 주길 원한다. 그러한 원초적인 욕구는 성적 소수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들은 그 대상이 조금 더 특별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그들을 이해하기가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서구의 많은 사회에서는 굉장히 많은 성적 소수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아주 정당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의 분위기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는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서 가지는 시선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그들 자신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합법적인 장소에서 만날 수 있게 될 것 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역시도 더 깨끗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은 왜 방관하게 되는가?
(학교 폭력 목격한 학생 44% “얻어맞는 친구 못 본 체했어요”)
요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뽑자면 당연 학교 폭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학교 폭력은 지난 5년 동안 5배 이상 급등했다. 이 기사는 학교 폭력 속에서도 학생들이 타인이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도 방관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기사는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깊게 분석하기 보다는 표면적인 통계 자료 위주로 말하고 있다. 통계적 표현에 집중을 한 기사이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이나 해결책들에 대해서도 서술했었다면 더 심층적인 기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실제로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부당한 폭력이 행해졌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폭력이 자신에게도 행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타인의 폭력을 고발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폭력을 불러온다고 생각할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리 속의 일원이 되는 것을 안정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등의 말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예로는 수업시간이나 토론 시간 등에서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친구를 보기 힘들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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