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만세전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진심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경험하지 않고서 어떻게 우리 조상의 한과 설움과 고생과 처절한 몸부림을 알 수 있는가? 그렇지만 을 통해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한 것 같다. 그것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지식인을 통해서 전달된다.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에는 지식인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처음 소설을 읽어 갔을 때만해도 주인공 이인화를 식민지 시대의 철부지 유학생이라 생각을 했다.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도 태연하게 잡지를 사고, 이발소를 가고, 카페에 가는 등의 행동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은 ‘자기발견의 여정으로서 주인공이 일본에서 경성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로 즉, 동경→신호→하관 →부산→김천→경성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작품에서 전개되는 에피소드 사이의 논리적인 관계보다는, 새로운 만남에 따른 주인공의 변화가 주축을 이뤘다.
작가가 이인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식민지 반봉건의 조선적 현실에 대한 고발이며 비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결말에서 보여주는 이인화의 인식과 행위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주체가 어떻게 자기정립을 해나가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의 매력은 이인화라는 주인공의 독특한 성격에 끌리는 것이다. 소설 내의 곳곳에서 그러한 특징들이 보여지고 있다. 특히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들 수 있다.
일인들의 대화는 일제의 차별적인 경제정책 때문에 빈곤해진 식민지 조선이 노동자를 싼값에 일본에 있는 탄광에 팔아넘기고 이익을 취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대화를 엿들으며 이인화는 심한 모욕감과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이해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식민지 지식인의 식민지 본국에서 식민지로의 이동, 식민지 지배자의 식민지로 이동, 그리고 식민 주체의 식민지 본국으로의 이동이라는 이주의 문제가 각각의 주체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점이다. 인화는 동경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일본 경찰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하거나 일본인인 것처럼 행동하거나 조선인임이 드러났을 때 하지 않아도 좋을 말까지 하며 사정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식민지 지배자와 식민지인 사이의 차이를 소거하기 위해일본인인체 하면서 식민지 지배자에 대해 소극적인 동일시를 시도한다. 인화는 자신이 우국지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일합방이 된 이후 세월이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나 반항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진술한다. 인하의 이러한 태도는 식민지 지배자에 대한 타자의 위치에 자신의 식민지적 지위가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인화의 행동과 의식의 괴리는 식민주체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대응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가 가능한 것은 인화 자신이 식민지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식민지 본국에서의 생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화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 식민지 지식인이지만 근대적 생활을 영위하는 근대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인화의 자기발견의 여정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인식의 과정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 조선의 현실을 구더기가 끓는 무덤으로 인식하면서도, 무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조선의 분위기를 잘 그려냈다. 자신의 조국을 구더기가 끊는 무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쉬울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병역을 면제하기 위해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했던 사람들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인화의 눈에 비친 조선은 일본인의 무례함, 가혹한 수탈, 아무 개념이 없는 조선 민중, 구태의연한 가족 제도 또한 겉멋이 든 신여성, 의리 없는 친일파들이 뒤섞여 우글대는 ‘구더기가 끓는 묘지로’로 보았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 무덤보다 더 나을게 없다는 이것 또한 지식인의 고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인화가 지닌 한계점
이인화는 지식인으로서 뛰어난 분석력과 현실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내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만한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또 다른 문제인식 단계로 넘어가므로 한계가 있다. 물론 문제인식 자체도 가치 있는 일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식에서 그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최대한 그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다. 인식한 문제가 개인의 문제라면 그것을 스스로든 조력자의 도움을 받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러한 문제가 사회의 문제라면 먼저 지식인으로서 인식한 문제들을 공론화함으로써 검증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후 연대적인 해결방안 등을 모색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제 인식 후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이인화라는 인물은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일본 형사들에게 감시와 수색을 당하고 난 후에도 이인화의 반응은 분함을 느끼기만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그리고 이인화는 부산에 도착하여 거의 모든 시가지가 일본식으로 바뀌고 조선인들은 비참하게 사는 것을 보고 그러한 광경을 ‘무덤’으로 인식한다. 그러한 상황을 ‘공동묘지’로 인식하며 기차에 타는데 등 너머에 와서 누운 기생의 머리에서 가끔가끔 끼쳐오는 머릿내와 향긋한 기름내 분내를 코로 은은히 맡아가며 눈을 감고 눕는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느끼는가? 이것 또한 구더기 냄새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인화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느덧 잠에 빠져들고 만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가진 분석력으로 자기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까지 지적할 수 있다. 31 운동 직전 일제의 수탈이라는 외부적 압력과 재래의 비합리적 구습 등의 내부적 모순으로부터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문제를 인식 하는 데에서 그치고 만다. 그는 그러한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의지도, 또는 그러한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열의도 없다. 허무주의와 무력감에 빠져 엉뚱한 방향으로 문제를 회피하거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아 이인화는 지식인이지만 자신의 내면에서만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고 만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아무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자기 합리화는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화한다는 의미보다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의 틀에 끼워 맞추어서 자기의 마음을 위안하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고 볼 때, 이는 지식인이 경계해야할 기질이다. 왜냐하면 자기 합리화를 일삼다보면 구체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잃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인화에게서는 자기합리화에 너무나도 익숙하게 젖어있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소설 내에서 P자, 정자에게 부부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인화의 모습을 보게 되면 위의 것들을 알 수 있다. 이인화가 어찌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으나, 적어도 부부인 이상 상대방에게 사랑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혼은 단순한 계약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인화는 부인에게 사랑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하물며, 동경에서 부인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지만 이인화는 집까지 돌아오는데 아주 긴 시간을 보내고 만다. 부인이 위독하다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인화는 그러지 않는다.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 자체가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잘못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러한 상황을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전제로 삼고, 이에 구속받지 않으려 한다.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성찰 없이 자신은 부인을 사랑하지 않으므로 가식적으로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또한 이인화는 목욕탕에서 일인들이 조선인을 멸시하고 비웃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그러한 모욕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인에게 자극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모욕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말 자체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조선인은 나라를 빼앗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고 있으며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일본에서 유학생으로 지내면서도 절실히 느끼는 바일 것이며, 조선인 역시 모욕감을 미처 느끼지 못하여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현실 또한 인식하고 있을 그이지만, 위와 같은 상황에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스스로 나설 용기가 그에게는 없다. 따라서 그저 합리화시키는 소시민적 자세로 물러나는 것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