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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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농촌이라는 환경이 가지는 이미지는 가난하고, 어렵고,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 강하다. 이러한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현재 농촌 삶의 영향이 큰 듯 하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성실함을 뜻하며, 성실하다는 것은 욕심이 없고 큰 부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농촌은 이러한 이미지인데 내가 생각하는 과거의 농촌은 쓸쓸하고 외롭다는 이미지보다는 가난하고 부지런한 이미지가 크다. 아마 텔레비전이나 책 등에서 힘든 농사일을 단결과 마을의 화합으로 행하는 모습을 본 영향이 큰 듯 하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내가 바라보는 과거의 농촌과, 1930년대에 1910년대를 바라보는 농촌은 과연 어떠했을까? 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게 되었다.
1910년대 농촌은 놀이가 사라지고 미래가 어찌될지 아무것도 모르는 말썽쟁이 아이들만 신이 나 있다. 주인공 돌쇠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윷놀이도 전과 같지 않게 신나지 않고 승벽이 없다. 쥐불놀이를 할 때도 노력해도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른들은 참여하지 않고 사회에 대한 허망함과 의욕을 상실해 있다.
노름은 소작인이 1년을 꼬박 농사를 지어야 벌 수 있는 돈을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지금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꿔서 로또를 바라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부지런함이 미덕인 농촌사회가 얼마나 힘들고 고되었으면 노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작인이 아무리 일을 해도, 비료값을 치르고 지주에게 땅값으로 벼 몇 섬을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오히려 빚만 쌓이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러한 농촌사회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 민습적으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물려받은 땅이 있는 지주거나, 돈 많은 상민은 상위층이 되고, 소작인은 하위층이 되는 계층화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하위층이 된 농민들은 이런 사회를 개선하지 않고, 신세만 한탄하며 회피의 일종인 노름으로 살아간다. 환경이 삶을 결정하는 부당한 현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돌쇠는 이웃의 바보인 응삼이가 소를 팔아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노름을 하게 만든다.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사람을 이용하고 도와줄 줄을 모르는 차가운 현실인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주변사람은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심리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현상은 당시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이 나타난다.
이러한 농촌의 모습은 다른 소설에도 나타나는데 1930년대의 농촌을 절실히 반영한 이기영의 「고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백룡이네 소가 쇠득이 콩밭의 콩작물 몇 섬을 먹어서, 그나마 잘 되어가고 있던 것을 소가 뜯어먹으니 화가 난 쇠득이 모친이 백룡이집 소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일로 백룡이 모친은 소 때문에 화를 내고 쇠득이 모친은 콩 섬 때문에 화를 내니 이웃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가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그마한 것에도 이웃끼리 약점을 토해내고 싸워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풍요가 없는 가난 속에선 모든 것이 삭막하고, 다른 사람을 밟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서화」와 유사한 농촌사회의 모습이라 하겠다.
김첨지(돌쇠의 아버지)는 돈도 좋지만 한 이웃간에서 그러는 것은 인심을 사납게 한다고 했다. 자신도 예전에 노름을 하였지만, 그때는 심심풀이로 한 것이고 지금은 돈에 욕심만 있기 때문에 서로 뺏어 먹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첨지는 돌쇠가 노름으로 번 돈을 가지고 술, 고기를 사먹으면서도 마을의 화합이 깨지는 것에 대해서는 불평을 토로한다. 그의 생각은 농민은 농민다운 생활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이율배반적이며, 삶 자체의 모순이다.
표면적으로는 다르지만 어머니 역시 돈을 준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생각을 보인다. 이웃과의 사이가 나빠지고, 어떤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자신부터 돈을 벌어 살고 보자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극심한 빈곤층으로 살지 않았으면 이런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잘못인 것은 발전 가능성이 없는 농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