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란 책에서 나는 한사람의 또 다른 천사를 만난 것 같다 우리는 빈부격차 그리고 사회적 갈등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등으로 인하여 빈부격차 그리고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그리고 지하철역등과 같이 어두운곳에서 그들 만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자신이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특별히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접함으로 인하여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내 자신이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배려할줄모르는 사람 이였다 그리고 내 자신 하나만 바뀐다고 전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느낀다.
저는 이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최일도 목사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사람인지 한 일화를 보면서 그의 단편적인 모습의 일화를 접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일도 목사님은 노숙자, 행려자에게 밥을 먹이는 ‘밥퍼’ 운동을 벌여 일명 ‘밥퍼’ 목사로 불리는 최일도 목사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다일공동체, 다일천사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 목사를 오랫동안 존경해 왔다는 류 감독은 이번 대담을 통해 최 목사의 개인적인 경험담부터 사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평소 궁금해 하던 것들에 대해 질문했는데
류 감독은 최 목사와 관련된 두 가지 일화를 예로 들며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며, 상상하기 힘든 반전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는 최 목사가 청량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 주는 것을 보고 주변의 영세 상인들이 팔던 무, 배추, 생선을 가져 왔던 일. 또 하나는 과거 최 목사가 절망에 빠져 지방을 헤매다 한 노인에게 밥을 청했는데, 그 노인이 “사지 멀쩡한 놈이 밥을 구걸해? 밥 한 그릇 줄 터이니 먹고 최일도한테 가보라!”고 꾸짖었던 일. 최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담을 마무리했다. “이 땅에 살다 가신 예수님은 거리에 있었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곁에 있었습니다. 그분의 닉네임은 아시는 것처럼 ‘죄인들의 친구’였으며, 결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후원자가 아니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읽은 책에서도 최일도 목사라는 천사가 불쌍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최일도 목사가 생각하는 박애정신과 비슷하다. 자기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 바로 이런 이상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좋게 말하면 자기발전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며 더 나은 의식주 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는 그런 시대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욕심만을 채우려고 하는 사회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 이 책의 느낌을 한 자 적어 보겠다.
정말 좋은 세상입니다 라고 외치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최일도 목사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를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이 살아온 순수한 기독교 신자였다. 하지만 점점 독신 목회자나 독신 수도 공동체에 대해 이해 못하는 교회세계가 싫어 만 3년 동안 전국의 수도 공동체들을 떠돌면서 수도원을 방문하였고, 오류동 동산교회의 교육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카톨릭 신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입시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서 한 수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아네스로즈, 김연수 수녀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의 삶에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아네스 로즈 수녀를 말 그대로 정열적으로, 미치도록 사랑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수녀였기 때문에, 그의 열정적인 사랑은 누가 보기에도 위험하고 무모한 사랑이었다. 그는 그녀를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고, 로즈 수녀 역시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를 피하였다. 하지만 최일도 목사는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였다.
로즈 수녀는 결국 그에게당신을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주어진 수도자의 길,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헤어지자라는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최일도 목사는 긴 방황을 하게 된다.
그는 남해의 진도에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서울로 돌아온다. 이런 그의 마음을 수녀가 받아들이고, 둘은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꿈에 그리던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한 최일도 목사는 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는 학생의 신분이었다. 그는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 유럽 공동체 순례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청량리 기차역에서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갈등했으나, 그냥 지나쳤지만, 다음날 그 곳을 지났는데 역시 그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이 저러한가를 느끼고 그 할아버지에게 밥을 사 드리며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그는 유럽 공동체 순례계획을 접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라며 세상에서 소외 받은 자들을 위해 돕기를 결심한다. 목사님이 봉사하시는 시작 당시 사람들은 그 분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각박한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힘드실 텐데 ‘좋은 세상입니다!’ 라고 외치시는 최일도 목사님, 감히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을 그렇게 실천하시는 목사님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한다는 다일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 청량리에서 거지처럼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없는 형편이지만 극소수의 교인들이 내는 헌금과 자비를 털어 점심(점심이라고 해야 고작 라면에 김치이지만)을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창녀들이나 호적도 없어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집이 없고, 돈이 없어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창녀들에게까지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시면서 그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시고 계신다. 최일도 목사님은 목사로서 청량리 사람들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해서 보여 주셨다. 목사님은 사랑이 없어서 황폐해지는 이 세상을 원망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참사랑의 나눔과 섬김 같은 것으로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자신부터, 실천하고자 하는 분이시다. 이렇게 최일도 목사님처럼 성심 성의껏 봉사하시는 분을 못 보았던 것 같다. 그냥 말로만 “이웃을 도웁시다. 사랑합시다.”라고 할 뿐이지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목사님처럼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이웃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 많다면 우리 사회는 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인데 현 시대가 안타까울 뿐이다.
1989년 7월 첫 주일 11시, 청량리 인쇄소 사무실. 다일 공동체는 처음엔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미약하게 첫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최 목사님은 그의 인도자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였기에 미약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을 따르고 믿으면서 어려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셨다. 인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소 힘들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다일 공동체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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