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1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1
 2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2
 3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3
 4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4
 5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5
 6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정당전쟁론 - 전쟁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Ⅰ. 서론
구약성경에는 전쟁이라는 주제가 평화라는 주제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구약성경이 평화에 관심을 가진 내용을 열거하는 것보다, 전쟁에 대한 내용을 열거하는 것이 더 용이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게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시기 위해,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가나안 거민들을 한사람도 남김없이 멸절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셨다. 이렇게 잔인한 전쟁이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실제로 하나님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이 대목에서 많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혹자는 하나님을 잔인하고 파괴적인 ‘전쟁의 신’으로까지 묘사하기도 한다. 사랑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을 사모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하나님의 잔인한 명령 앞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만약 온 인류의 평화와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동시에 전쟁과 심판 역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둘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완전히 멸절하라’는 무시무시한 명령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우선되는 것일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전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전쟁은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의견은 전통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를 고수하겠다는 ‘평화주의’와 명분있는 전쟁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보는 ‘정당전쟁론’의 두 갈래로 나뉘어져 왔다. 기독교의 두 전통으로서의 정당전쟁론과 평화주의는 모두다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고, 따라서 둘다 전쟁 그 자체는 악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 두 전통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는 주장에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 평화주의자들은 전쟁을 피해야 하는 의무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정당전쟁론자들은 조건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정당전쟁론자들은 평화와 비폭력이라는 가치가 정의라는 가치와 서로 충돌할 때, 전쟁을 피하는 것만이 도덕적 의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입장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해왔고, 평화와 정의를 위한 자신들의 생각을 나름대로 주장해왔다.
Ⅱ. 본론
1. 평화주의와 정당전쟁론
1) 평화주의
평화주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반대하고, 그리스도인들의 군복무와 참전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이 입장은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폭력적 행동을 거부한다. 설혹 그것이 더 큰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이들의 평화이해는 그래서 비폭력 무저항이다. 이것은 콘스탄틴 이전의 첫 3세기 동안 교회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S. Thistlethwaite, 정의, 평화, 교회, 박종화, 서진한 역 (한국신학연구소, 1989), p.19.
기독교적 평화주의는 기독교인이라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므로 폭력과 전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 하나님의 계시가 그 분 안에 충족히 드러났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랑과 평화, 용서와 섬김의 질서를 가져오셨다. 무력을 통해 새로운 왕국을 세우는 대신, 도리어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빰을 치거든 왼쪽 뺨도 돌려대라”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용서와 비폭력을 천명하고, 이미 예수와 함께 시작된 그 새로운 질서의 생생한 증거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방식이 무능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 선포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근거는 부활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과 평화,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는 길은 메시야적 평화주의로서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무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역사를 움직이고자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평화주의자들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전략은 교회가 교회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즉 용서와 섬김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존재 자체가 보복적 앙갚음과 위압적 지배를 덕목으로 하는 이 사회 안에서 생생한 대안적 공동체의 증거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사회윤리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너무 문자적으로만 해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콘스탄틴 대제 이후 ‘시민 의무의 불복종’이라는 비판 속에 교회 주변으로 밀려 나거나 아예 교회에서 떨어져나가 이단으로 간주되기도 했었다. 아씨시의 프란시스, 위클리프파, 에라스무스, 슈벵크펠트, 톨스토이, 슈바이쳐, 여호와의 증인,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등이 평화주의자의 범주에 속하며, 특히 재세례파, 퀘이커파, 형제단은 “역사적 평화교회”라고 불린다. 평화주의는 그 입장과 태도가 조금씩 다른점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비폭력주의를 추구하며, 대개는 무저항을 평화로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