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 서희
1-1) 서희는 누구인가
1-2) 서희의 사회진출
1-3) 서희의 직책과 서희의 역할
2 . 소손녕
2-1) 소손녕은 누구인가
2-2) 소손녕의 거란내 입지
3 . 거란의 침략과 서희의 외교
3-1) 거란 침략 배경과 고려의 내부 사정
3-2) 서희 외교 논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서희는 18세의 나이로 광종 11년에 치러진 과거시험 갑과로 발탁되었다. 아버지 서필이 내의령인데도 불구하고 음서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아버지가 당 대표 국회의원인데 굳이 공천을 받지 않고 지역구 의원으로 나와 선거를 치룬 격이다. 당시 시대배경으로써 광종은 왕권을 강화한 왕이고 노비안검법이나 과거제 도입 등으로 귀족을 견제한 왕인데 서희는 당당히 과거 합격 후에 나중에 광종의 총애를 받았다. 여기에는 고려초 태조 왕건 때 다른 지배세력 호족이 왕실과 혼인을 맺고 대호족으로 성장한 데 비해 이천 서씨 가문은 왕실과 혼인한 사례가 없어 대호족으로 크지 못한 배경도 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치루고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 서희의 외교 능력의 탁월함도 돋보였는데 당시 고려는 송나라와 10년 이상 국교가 단절되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서희가 외교관으로 찾아가 다시 수교하고 오는데 그 예법이 맞고 용의가 법도에 맞아 송 황제로부터 관직과 선물까지 받아 귀국하였다.
1-3) 서희의 직책과 서희의 역할
서희는 갑과에 급제하고 광평원외랑 벼슬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승진을 거듭해 내의시랑이 되었다. 내의시랑은 아버지 서필이 내의성 장관급인 내의령을 지냈던 내의성 차관급으로 아버지 후광도 어느정도 한몫해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과거 급제한 뒤 12년 후에는 송나라에 사신(외교관)으로 다녀온 것이다. 후에 성종 2년에는 좌승을 거쳐 병관어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때도 바른 말로 왕을 인도할 줄 알았다. 에 따르면 성종이 미행 미행- 지위 높은 사람이 몰래 살피기 위해 남루한 옷차림으로 남몰래 다님
으로 영명사에 놀러 가려는 것을 서희가 글을 올려 간언하였다. 이에 왕이 미행을 중지하고 말을 상으로 내렸다. 이후 내사시랑에 올랐다. 그러다가 성종 12년에 거란이 침략하자 중군사로 임명되어 외교담판을 벌이러 간 것이다.
신복룡, 박현모 외 지음. 서해문집 출판사
장철균 지음. 살림 출판사
안주섭 지음. 경인문화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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