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레디메이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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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蔡萬植)은 1902년 6월 17일,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에서 아버지 채규섭과 어머니 조우섭 사이에서 7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 둘은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막내아들로 자랐다. 부농이었던 집안 덕택에 어린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성장했다. 만식은 본명이고, 호는 백릉(白菱) 또는 채옹(采翁)을 사용했다. 채만식은 ‘불란서 백작’이라 부리곤 했는데, 그것은 돈은 없었지만 곤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깨끗이 입고 모자까지 쓰고 다녀 주위 사람들이 불란서 백작같다고 하여 붙여준 것이다.
6세에 집에서 차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하고, 1910년(9세)에 임피보통학교를 입학하고 4년후에 졸업한 후, 1918년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입학했다. 18세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났고, 3학년 재학중인 그 다음해에 부모의 강권에 의해 스무살이던 은선흥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이 결혼은 채만식에 있어서 평생 짐같은 존재가 되는데,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고 신식 교육을 받았던 그에게 있어 조혼은 구시대의 잘못된 풍습이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정식 이혼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별거하며 지낸다. 그러한 이유로 채만식은 그의 작품을 통해 조혼이라는 구시대의 악습과 여성 운명의 문제에 유별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1922년에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그 해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다음해 여름에 관동 대지진과 집안의 경제적인 파탄 때문에 학업을 중도 포기한다. 그리고 같은 해 뒷날 유고작으로 발표된 「과도기」를 탈고한다. 1924년에 경기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하고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3호에 이광수 추천으로 발표, 문단에 등단한다. 1925년에 《동아일보》정치부 기자로 입사, 후에 개벽사, 조선일보사 등에 입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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