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 국내 상황
◈◈한국전쟁의 원인
◈◈한국전쟁 순서
◈◈전쟁의 피해
◈◈전쟁 중 기독교
◈◈한국전쟁(6.25전쟁) 이후 60년 후반까지 한국교회
◈◈1970년대, 80년대 교회성장
◈◈1990년대 한국 기독교-새로운 영적 쇄신과 화해된 민족 평화공동체 형성을 지향할 때
◈◈한국 교회의 성장 요약
◈◈한국교회 침체 현상의 대안.
◈◈부록-한국의 대형 교회
◈◈생각해볼 문제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 :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다.
1943년 11월 23일에서 27일까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는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등 연합국 수뇌가 회담을 열었다. 정치적인 문제로는 일본에 대항한 연합군의 협력에 대해서 협의하고 일본의 영토문제에 대해서 연합국의 기본방침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방침을 ‘카이로 선언’으로서 발표하였다. 그 중 조선문제에 관해서는 "한국국민의 일본예속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적절한 과정을 거쳐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가 되도록 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적당한 시기"란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조선의 독립은 신탁통치를 실시한 후에 보장한다.
얄타회담은 1945년 2월에 열렸던 회담이다. 이 회담에는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참석을 했다. 연합군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열린 이 비밀회담은 독일의 영토문제, 일본의 영토문제 등이 협의되었다. 이 회담에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었는데 그 결론은 "일정기간 미, 영, 소, 중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실시한 후 독립을 보장한다"였다. 이 회담에서 잠정 합의된 이 부분이 나중에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1945년 7월 포츠담회담, 포츠담선언: 조선의 독립 재확인
독일패배후인 7월에 미국(루스벨트의 사망에 의해 트루먼이 참석), 영국(처칠, 도중에 애틀리로 교체), 소련(스탈린)의 수뇌가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에서 만나 회담을 열었다.
6.25전쟁 - http://myhome.edunet4u.net/iloveu
교과서 밖 국사 - http://myhome.edunet4u.net/tapsa
논문 - 한국전쟁과 기독교, 1950-1953김흥수
해방 후 한국 기독교의 역사인식과 죄책고백 - 김경재
해방 후 한국교회의 성장과 해외선교-전호진
한국 교회의 성장과 저성장- 이광순
한국교회 남북통일 운동의 흐름 -문은배
부흥의 기적 차례-김대인-http://www.kimdi.net/Revival/00revivalc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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