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세기의 교육과 계몽사상
1) 계몽기 각국의 교육
2) 계몽사상(프랑스 중심으로)
2.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
1) 루소의 생애
2) 교육사상
3) 「에밀」의 구성
3.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영향
1) 바세도브(1724~1804)
2) 살즈만(1744~1811)
3) 칸트(1724~1804)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 청교도의 가정에서 시계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루소가 출생한 후 어머니의 별세와 이로 인한 아버지의 방탕생활 때문에 유년시절은 그의 숙모의 손에 의해 성장을 했다. 16세에 집을 나와 각지를 방랑하다가 어느 부인의 도움으로 독학을 하였다. 38세 때에 「학예론」(1750)이 디죵 학사원의 현상논문에 당선된 후 일약 유명해졌으나 독신으로 지내며 저술에 몰두하였다. 자기의 하녀 테리스를 사랑하여 아내로서 동거생활 25년 만에 결혼하였으며, 다섯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양육하지 못하고 양육원에 보내기도 하였다.
루소가 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학예론」을 통해 학문과 예술의 진보가 도덕을 타락시켰다는 주장을 펼친 1750년 이후이며, 그 후 「인간불평등기원론」(1755)과 「사회계약론」(1762). 그리고 교육소설 「에밀」등의 저작을 발표하였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의 요지는, 인간은 자연형태에서는 모두 평등하였는데, 국가와 사유재산제도가 생겨난 후로부터 인간사회에는 불평등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루소의 사상은 「사회계약론」에 의해 완성을 보게 되어 서양 근세의 민주주의 사상적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은 왕권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에밀」은 반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사상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8년간의 세월을 보내고 58세 되던 해인 1770년 귀국하여 그 해 「창회록」을 썼다.

분야